광기를 길들이다 4
3. 피할 수 없다면
윤재가 정혁진 회장을 만난 곳은 한경 본사 빌딩의 회장실이 아니라 서울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를 달려야 나오는 교외의 어느 주택에서였다.
한 시간을 차로 달리니 녹음이 나왔고, 그러고 나서 다시 20분가량을 더 달려 짙푸른 나무들 사이에 지어진 붉은 벽돌의 주택 앞에서 차가 멈췄다.
물론 운전은 수혁이 직접 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윤재는 수혁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왜 이런 곳에 정혁진 회장이 있는지 그 의문은 주택 안으로 들어간 지 3분도 되지 않아서 풀렸다.
응접실에서 윤재를 기다리고 있던 정혁진 회장은 휠체어에 탄 채 팔에 주사 줄을 꽂고 있었다.
움푹 들어간 눈 아래쪽과 예전에 방송을 통해 봤던 모습보다 절반 정도 살이 빠진 모습은 누가 봐도 병색이 완연했다.
마른 얼굴, 얼굴에 핀 검버섯 그리고 듬성듬성 빠진 머리카락은 하얗게 셌다.
“너는 나가 있거라.”
정 회장은 수혁에게 나가 있으라고 대뜸 말했다. 그리고 수혁이 밖으로 나간 다음에야 정 회장이 윤재에게 소파를 권했다.
“앉지 그래.”
“아닙니다. 오래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고집이 센 아가씨로구만.”
“시간 낭비를 하기 싫은 것뿐입니다. 제가 보기엔 회장님께서도 사람을 오래 만나실 상황은 아닌 것처럼 보여서요.”
윤재의 대답에 정 회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웃을 때마다 바람이 새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얼마나 오래 살 것 같은가?”
“그걸 제가 알아야 합니까? 그건 정수혁 씨만 알면 될 것 같은데요?”
“나는 이제 3개월도 안 남았네.”
동정표라도 얻고 싶은 것일까. 그런 것이라면 실패했다고 말하고 싶다.
자신은 정 회장이 어떤 상태라고 해도 동정하고 싶지 않다.
정 회장은 적어도 남들이 누리지 못한 것들을 엄청나게 누려 온 사람이다.
그리고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많은 것을 누린 사람이 공평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고 왜 동정해야 하는 것일까.
자신의 엄마도, 아버지도, 수혁의 어머니도 죽었다. 그리고 정 회장도 이제 죽는 것에 불과하다.
죽음의 방식만 다를 뿐이지, 병으로 죽는 것이나 사고로 죽는 것이나 죽음은 다 똑같다.
엄마와 아버지의 죽음을 동정하지 않은 마당에 정 회장의 죽음을 동정할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러면 더더욱 제가 회장님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빼앗으면 안 되겠네요. 시간 끌지 않고 본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장님, 저는 정수혁 씨와 어떤 식으로든 엮이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윤재의 결심은 단호했다. 정수혁에게는 잡힐 생각이 없다. 절대로 잡혀 줄 마음이 없다.
도망칠 수 있다면 도망칠 것이다. 그 시선에서 달아나고, 그 손길에서 달아날 것이다.
알고 있다.
한 번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틈을 주면 그 남자는 자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그러니까 단 한 번의 틈도 주지 않을 것이다.
“무슨 짓을 하셔도 저는 정수혁 씨와는 절대 엮이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엉뚱한 사람들 괴롭히는 것은 그만두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가씨.”
정 회장이 쇳소리 섞인 목소리로 윤재에게 말했다.
“수혁이가 어렸을 때 그 아이 엄마와 내가 이혼을 했지. 원인 제공을 한 쪽이 나였기 때문에 양육권을 아이 엄마에게 빼앗겼어.
그런데 나는 그 아이 하나밖에 없어. 자식을 낳을 수가 없으니까.
그 아이를 낳고 나서 큰 병을 앓았기 때문에 나는 더는 자식을 못 낳아. 그러니까 내가 이룬 모든 걸 물려줄 수 있는 놈이 그놈 하나뿐이야.”
“그런데 왜 제가 그 일에 관련이 된 겁니까?”
“9년 전에 사고로 그 애 엄마가 죽고 내가 그 애 법적 보호자가 되었지. 그런데 저놈이 고집이 보통이 아니라서 내가 주는 돈은 한 푼도 받지 않는 거 아니겠나.”
정수혁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집에 들어와서 살라고 해도 싫다고 하면서 독서실 따위나 전전하고, 내가 주는 돈은 받지도 않고, 공부를 해야 하는 놈이 아르바이트나 해대고.
그런데 똑똑한 놈이라서 그러고도 대학에 들어가더니 유학까지 훌쩍 떠나더군. 내 돈은 받지도 않고 제힘으로 말이야. 그리고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자기 회사를 차리지 뭔가.”
머릿속으로 정수혁의 9년이 그려졌다.
정수혁에게 있어서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남들이 힘들고 어렵게 하는 모든 것이 정수혁에게는 그저 슬슬 해도 되는 그런 것에 불과했을 것이다.
“협박도 해 보고 일부러 사업 못 하게 다 막아 버리는 것도 해 봤지.”
“제 고모부의 사업장에 하신 것처럼 말인가요?”
“그런데 안 통하더군. 하나를 막으면 다른 하나를 뚫어 버리고, 다시 막으면 또 뚫어 버리고.
저놈이 사업 수단이 아주 좋아. 회사를 끌고 나가는 법을 알아.
자본도 없이 시작한 작은 회사를 꽤 든든하게 만들어 놓는 것을 보고 저놈이 아니면 내 자리는 아무에게도 물려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
단지 내 아들이라서 물려주려는 것이 아니라 저놈이 회사를 맡으면 내가 키운 것보다 몇 배는 더 크게 키워 놓을 거라는 감이 왔지.”
“하지만 말을 들을 정수혁이 아니지요.”
“그래, 아가씨. 말을 들을 놈이 아니지. 그런데 그 말을 안 듣던 놈이 말이야, 어느 날 제 발로 찾아와서 그러더군.
여자 하나만 제 앞에 데려다 놓아 주면 원하는 대로 다 해 주겠다고.”
이 빌어먹을 부자의 거래에 자신이 이용당한 것이다.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더군. 그놈은 목줄에 매이는 법을 모르는 짐승 같은 놈인데, 그 날짐승 같은 놈이 스스로 우리 안으로 기어들어 와서 목줄에 매이겠다고 하더군. 여자 하나만 제게 데려다주면 말이야.
그러니 내가 어쩌겠는가. 그놈이 원하는 여자, 데려다줘야지. 스스로 목줄에 매이겠다는 기회를 놓치면 바보지.”
정수혁은 무슨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윤재는 잠시 수혁의 표정을 떠올려봤다.
정수혁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한 가지는 안다. 목줄에 매이지 않는 남자라는 건 안다.
그런 남자가 자기 때문에 스스로 목줄에 매이겠다고 숙이고 들어갈 때는 이미 작정을 했다는 뜻이다.
모든 것을 다 걸어서라도 기어이 자신을 붙잡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런 남자에게서 달아나려면 자신도 그만한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죽기 살기로 자신을 가두려는 남자에게서 벗어나려면 자신도 죽기 살기로 도망쳐야 한다.
그런데, 도망칠 수 있을까.
윤재는 처음으로 수혁이 무섭게 느껴졌다.
정수혁에게 화가 나고 짜증이 난 적은 많았지만, 적어도 수혁이 무섭다고 느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섭다.
그 집착이 무섭고, 그 광기가 무섭다.
그건 집착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망칠 수 없다면.’
그런 말이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하지만 정수혁과 즐길 마음은, 미안하지만 조금도 없다.
즐긴다? 그런 악취미는 없다.
“아가씨, 선택을 해야 할 거네. 나는 수혁이 놈을 놓아줄 마음이 없으니 아가씨에게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네.
나는 곧 죽을 몸이라서 딱히 무서운 것도 없고, 죄는 지금까지 충분히 많이 지어서 여기서 한두 가지 더 짓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네.
하지만 아가씨는 조금 다르겠지. 아가씨, 더는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아가씨의 착각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싶네.
사람은 스스로의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고, 그 가진 것들은 잃기 전에는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하지.
예를 들면 아가씨가 누리고 있는 자유 같은 것.
내가 마음만 먹으면 아가씨의 자유를 구속할 수도 있고, 아가씨에게 없는 소문도 뒤집어씌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
아가씨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어 줄 수 있지.”
다 죽어 가는 노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힘없는 목소리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윤재는 바보가 아니다.
정혁진 회장 정도면 자신 하나쯤이야 충분히 그렇게 만들 수 있다.
“제가 언제까지 정수혁 옆에 있어 줘야 하는 겁니까?”
“그놈이 질릴 때까지.”
“회장님은 회장님의 소중한 아들 옆에 제가 있어도 된다는 겁니까?”
“아가씨가 어때서? 부친은 훌륭한 교육자이셨고 아가씨는 좋은 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해서 훌륭한 스펙과 경력을 갖추고 있지.
수혁이 놈이 눈독 들이지 않았더라면 아마 우리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갔겠지.”
“좋게 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 스카우트가 이상한 방향으로 들어갔네요.”
“그래, 그 이상한 방향으로 들어간 스카우트를 받아들이겠나?”
“고용주와 계약 기한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진다면요.”
“그건 내가 아니라 수혁이 놈과 해야겠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정혁진 회장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윤재가 돌아섰다.
정혁진 회장은 설득할 어떤 틈도 없다. 이제 곧 죽을 남자에게 무슨 틈이 있겠는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죽음을 앞둔 사람이다.
그러니까 협상을 하려면 이제 정수혁과 해야 한다.
“아가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 윤재를 정 회장이 불렀다.
“네?”
“그놈을 잘 부탁하네.”
“그건 제게 하실 부탁은 아닌 듯합니다.”
“아가씨라면 그놈을 잘 길들일 듯해서 마음이 놓이는군.”
“.”
그 말에 윤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녹음이 우거진 정원에 서서 수혁은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이 싱그러운 녹음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하얀 연기를 내뿜는 남자를 윤재가 한참이나 쳐다봤다.
저건 앞으로 제가 길들여야 하는 짐승이었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수혁은 질문 하나 던지지 않았다.
궁금할 것이 있을 것도 같은데 아무것도 묻지 않는 수혁에게 먼저 말을 붙인 것은 윤재였다.
“조건이 있어.”
“무슨 조건?”
“꽤 많아. 하나라도 못 들어준다고 하면, 나는 죽는 한이 있어도 네 곁에 있을 생각이 없어.”
“말해 봐. 그 조건이라는 거 전부 들어줄 테니까.”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있을 텐데?”
“죽으라는 것만 빼고는 전부 다 할 수 있어. 걱정 마. 네 생각보다 나는 훨씬 더 너한테 미쳐 있으니까.”
“자랑거리는 아니잖아?”
“말해, 그 조건이라는 거. 뭘 해야 널 가질 수 있을지 말해.”
운전대를 잡은 수혁의 손을 윤재가 물끄러미 쳐다봤다.
큰 손.
저 큰 손이 예전에 자신의 몸을 만지던 것을 윤재는 기억한다.
그런 기억은 쉽게 잊히는 것이 아니다.
저 손으로 제 가슴을 만지고 제 가랑이 사이를 만졌다.
삽입만 하지 않았지 그건 섹스와 다를 것 없었다.
“첫 번째 조건. 안에다 싸지 않는다.”
“삽입 불가 조건에서 많이 업그레이드되었네.”
“두 번째 조건. 너하고 결혼은 안 해.”
“결혼하면 한경 사모님이야. 하긴, 그런 거 좋아할 서윤재가 아니지.”
“세 번째 조건. 내가 허락할 때만 할 수 있어.”
“까다롭군.”
“네 번째 조건. 기한은 1년으로 하자.”
“네 번째 조건만 빼고 가자.”
“안 돼. 기한을 정해야 해.”
“그건 내가 별로야.”
“1년 안에 내가 널 조금이라도 좋아하게 만들어 봐. 그럴 자신이 없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말고. 왜? 자신 없어? 1년이나 시간을 주는데도 내가 널 좋아하게 할 자신은 없나 봐?”
네 번째 조건을 붙인 이유가 있다.
1년이 아니라 5년이 지나도 정수혁을 좋아하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1년이라는 시간적 유예를 두고 정수혁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네 번째 조건을 붙였을 뿐이다.
그런 희망적인 조건 하나 정도는 붙어야 정수혁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마치 승자가 된 것처럼.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는 그 얼굴이 일그러질 것이다.
그래. 이빨을 뽑고, 발톱을 자르고, 목줄을 채워 우리에 넣자.
이 광기를 길들여 발아래 복종하게 하자.
도망치지 못한다면 길들여 버리자.
“좋아. 1년.”
역시. 자신만만한 정수혁이다.
“그러면 거래 성립인 거지?”
끼이이익-.
브레이크를 밟자 차가 멈췄다.
“왜 여기에 서는 거야?”
“거래가 성립되었으니까.”
“그래서?”
“돌아갈 때까지 참을 이유가 없잖아. 9년이나 참았는데 그만하면 참을 만큼 참았지.”
“차 안에서 하려고?”
“카섹스 해 본 적 있어?”
“해 봤을 것 같아?”
“아니.”
“왜 안 해 봤을 것 같아?”
“그런 성격이 아니니까, 서윤재는.”
“왜? 난 열여덟 살 때 거실에서 너하고 뒹굴었어. 그런데 카섹스를 안 해 봤을 것 같다고? 나를 너무 순진하게 보는 거 아니니?”
“한기정하고, 같이 잤어?”
그 이름이 왜 안 나오나 싶었다.
“잤을까 안 잤을까?”
물론 한기정과는 한 번도 섹스한 적이 없다.
한기정이 혼전 순결주의자라서 그런 것도 있었고, 별로 섹스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윤재에게 있어서 섹스는 정수혁을 기억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 것이 달가울 리가 없다.
그런 까닭에 의도하지 않게 아직 정수혁밖에 모르는 몸이지만, 그런 것을 굳이 알려 줄 이유는 없다. 차라리 모르는 쪽이 더 애가 타겠지.
정수혁은 오늘부터 애가 타야 한다. 길들이기의 첫 번째 과정은 애태우기다.
좀처럼 쉽게 손에 들어오지 않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인내심을 발휘하며 애를 태우는 과정, 정수혁에게는 그것이 꼭 필요하다.
그건 일종의 개를 훈련하는 방법이다.
앉으라면 앉고, 일어서라면 일어서는 그런 개.
그렇게까지만 길들일 수 있다면 나중에 정수혁에게서 벗어날 때 그 면전에 대고 확실하게 말해 줄 것이다. 개새끼라고!
“안 잤을 거야.”
“설마.”
“나 외에 누가 널 만족시키겠어.”
대체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안전벨트를 푸는 것과 동시에 수혁의 손이 윤재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윤재에게로 몸을 기울인 수혁이 그녀의 입술을 물어뜯듯 삼켰다.
다소 다급한 키스에는 무척이나 서두르는 감이 있었다. 지금 이 남자가 얼마나 애가 타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키스였다.
입술을 물어뜯으며 입 안을 혀로 휘젓는 남자의 키스는 난폭하고 일방적이었다.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혀뿌리를 뽑을 것처럼 키스하던 남자가 조금씩 윤재의 위로 몸을 내렸다.
탁.
좌석의 레버를 당기는 순간 두 사람의 무게가 실린 좌석이 뒤로 넘어갔다.
“읏.”
좌석과 함께 뒤로 넘어가는 윤재의 위로 수혁이 올라탔다.
운전석에서 조수석으로 넘어온 수혁이 윤재의 위에 올라타고 그녀의 입 안으로 더 깊숙하게 제 혀를 밀어 넣었다.
그녀의 혀를 휘감고 빨아 당기다가 치열을 훑었다.
숨을 전부 빼앗아 삼키면서 그녀가 입고 있는 셔츠 안으로 손을 넣었다.
가슴을 한번 움켜쥐었던 손이 그녀의 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풀었다.
“응, 으응.”
맞물린 입술 틈새로 윤재의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읏.”
입술을 떼며 윤재가 숨을 헐떡였다. 스커트 안쪽으로 파고든 손이 그녀의 팬티 위를 꾹 눌렀기 때문이다.
그가 제 가랑이 안쪽을 누르는 순간 윤재는 자신의 팬티 안쪽이 습하게 젖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갗에 닿은 팬티가 축축했다.
키스 때문에 젖은 것인지 아니면 지금부터 시작될 행위를 기대하며 젖은 것인지 윤재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생각나네, 서윤재. 그때도 이렇게 젖었었지. 조금 만져 줬더니 물이 흥건하게 나오던 거, 기억해?”
“정수혁이 개처럼 낑낑거리던 건 기억하고 있어.”
“다리 벌리고 허리 흔들면서 물을 질질 싸던 것은 기억 못 하고?”
“내 가랑이 사이에서 개처럼 핥던 건 기억해.”
“솔직히 말해 봐. 그때 박아 줬으면 했지?”
“그런 적 없어.”
그녀의 위에 올라탄 수혁이 제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핏줄이 선 손이 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 가는 것을 좌석 위에 누워서 쳐다보며 윤재가 숨을 골랐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남자가 다리 사이가 젖을 정도로 섹시하다는 건 인정한다.
그건 9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9년 전, 고작 열여덟 살의 어린 남자였을 때도 정수혁은, 그래, 섹시했다.
그때도 지금도 저 눈매는 더없이 야하다.
야한 눈매를 가진 남자.
저런 눈으로 쳐다보는데 젖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짜증 나는 것과 별개로, 정수혁을 싫어하는 것과는 별개로 정수혁이 야한 눈매를 가진 섹시한 남자라는 것은 인정한다.
“조금만 솔직해져 봐, 서윤재. 내 좆이 그리웠지?”
“좆을 박은 적이나 있니?”
“빤 적은 있잖아.”
“기분이 더러웠었지.”
“너는 기분이 더러우면 젖어?”
셔츠를 벗어 던지고 바지의 버클을 푼 수혁의 손이 다시 윤재의 스커트를 걷어 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팬티 위를 문질렀다.
손가락이 팬티의 중심을 꾹 누르며 문질러 오자 윤재의 허리가 잘게 떨렸다.
윤재의 위로 몸을 실은 수혁이 그녀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며 손을 움직였다.
팬티 위에서 움직이던 손이 팬티를 끌어 내리자 윤재가 엉덩이를 살짝 들었다.
젖은 팬티가 다리 아래로 내려가더니 발목에 걸쳐졌다.
한쪽 발목에 팬티를 걸친 채로 윤재가 고개를 젖혔다.
가쁜 숨이 차의 천장에 닿는 것 같았다.
가끔 지나가는 차 때문에 타고 있는 차가 흔들렸다.
“하읏.”
길고 굵은 손가락이 젖은 음모를 가르고 살점을 벌렸다. 그리고 살점 안으로 파고든 것이 그녀의 안쪽을 긁어 댔다.
찌걱찌걱.
끈적끈적하게 젖은 소리가 좁은 차 안을 적나라하게 울렸다.
풀린 채로 허리까지 내려온 브래지어의 위쪽으로 드러난 젖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꼭지를 물어뜯으며 수혁이 그녀의 가랑이 사이를 손으로 쑤셔 댔다.
두 개, 세 개까지 늘어난 손가락으로 그녀의 가랑이 안쪽을 찌르며 흰 젖무덤에 붉은 흔적을 잔뜩 남기는 남자의 숨소리도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엉덩이가 닿은 가죽 시트가 축축하게 젖어 윤재가 허리를 떨 때마다 쩍쩍 소리를 냈다.
9년 전의 기억이 전부 되살아났다.
이 손, 이 뜨거운 몸, 전부 기억이 났다.
마치 9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 하나도 사라지지 않게 상자에 담아 봉인해 뒀던 것이 지금 뚜껑이 열린 것처럼 전부 낱낱이 기억이 났다.
그때도 꼭 이랬다.
“하읏, 읏.”
열기에 들뜬 숨소리가 흔들렸다.
안쪽을 한참 동안 헤집던 손이 빠져나오더니 발기한 페니스를 쥐었다.
젖은 하체에 단단한 것이 문질러졌다.
예전에 한 번 빨았던 적이 있는 그것이었다.
그때 수혁과 꽤 여러 번 섹스와 거의 유사하게 해댔었다.
자신의 방에서 처음 하고 난 이후에 수혁의 방에서 그리고 거실에서, 식탁에서 몇 번이나 해댔었다.
고작 1박 2일 사이에 참 많이도 했다.
발정이 난 개처럼 그렇게 한 덩어리가 되어서 집 안 여기저기서 꿈틀거렸다.
삽입도 못 할 거면서 수혁은 그때 왜 그렇게 저를 빨아 댔을까.
그때 만약 부모님이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정말 거기에서 멈췄을까?
분위기에 휩쓸려 삽입까지 가지 않았을까.
그러지 않았을 거라는 보장이 있을까.
자신은 없다.
그때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수혁에게 삽입을 허락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더라면 관계는 그때 이미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응.”
단단한 것이 제 가랑이 사이를 문질러 오자 윤재는 은밀한 곳에 퍼지는 열기에 숨을 삼켰다.
거부감이 들 법도 한데, 조금의 거부감도 느껴지지 않는 것은 수혁의 말대로 자신도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분위기에 취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자신의 머리와는 별개로 몸은 계속 정수혁을 원하고 있었던 것일까.
정수혁의 몸.
제 위를 누르고 있는 남자를 윤재가 쳐다봤다.
지금도 수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때 전국체전에서 수영으로 금메달을 땄다는 남자의 어깨는 무척이나 넓었다.
넓고 단단한 어깨 그리고 가슴.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단단한 복부.
저보다 큰 남자.
그리고 뜨거운 살갗.
닿아 오는 살갗과 문질러 대는 단단한 분신의 열감에 윤재가 허리를 떨었다.
젖은 입구에 페니스의 끝이 닿았다.
“흑.”
그 열감이 제 안으로 천천히 파고들기 시작하자 윤재가 작게 신음했다.
단단하고 굵은 열 덩어리가 닫혀 있던 제 몸을 벌리며 파고들자 윤재의 허리가 들렸다.
그것은 윤재의 안을 꽉 채우며 열기를 과시했다.
열기가 자신을 미치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버거운 질량감이 저를 숨 막히게 하는 것인지 윤재도 구분할 수 없었다.
다만 그 뜨겁고 굵은 것이 그녀의 안쪽을 긁어 대며 들어가 깊은 안쪽을 퍽, 찔렀다.
“하윽!”
좌석의 팔걸이를 꽉 쥐며 윤재는 흐느꼈다.
단단한 것이 제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제 안쪽에 자리를 잡은 것이 존재감을 과시하며 계속 불끈거렸다.
빈틈없이 맞닿은 하체에서 젖은 음모가 뒤엉켰다.
뒤엉킨 젖은 음모가 소리를 낼 때마다 윤재의 귀가 달아올랐다.
천천히 내쉬는 숨에 열기가 담겼다.
허리에서 등으로 그리고 목으로 내달리는 이 열기가 쾌감이라는 것을 윤재도 알고 있다.
꽉 채워진 아래쪽이 낯설었다.
이물감으로 가득 채워진 안쪽이 아프면서도 저릿하게 울리는 쾌감이 나쁘지 않다.
“왜 이렇게 조여?”
조금 전까지 그렇게 성급하게 키스하던 수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느긋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만 느긋하지 그가 실제로 느긋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윤재는 알고 있다.
진짜 느긋하다면 입술을 계속 그렇게 깨물어 대지 않을 테니 말이다.
윤재는 지금 정수혁이라는 남자의 새로운 버릇을 알게 되었다.
긴장하면 눈은 웃지만 입술을 자꾸 깨문다. 잘근거리며 말이다.
이제 정수혁에 대해서 하나 알게 된 기분이다.
9년 만에 겨우 하나 알았다.
우습지만 웃지 못했다. 정수혁이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
그녀의 허벅지를 양손으로 움켜잡은 수혁이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아! 아, 아!”
그가 허리를 위아래로 흔들 때마다 그녀의 안쪽으로 단단한 것이 퍽퍽 찔러 들어왔다.
단단한 것을 물고 있는 것도 버거운데 그것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윤재의 몸이 정신없이 흔들렸다.
“아! 아아!”
수혁의 어깨를 쥔 채로 윤재가 소리를 질렀다.
좁은 차 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소리가 메아리치며 다시 그녀의 귓속으로 날아들었다.
제 신음에 둘러싸인 채로 윤재가 저를 누르고 있는 남자의 아래에서 허리를 흔들었다.
쾌감이 사정없이 그녀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아, 읏! 아, 아아!”
“좋아? 서윤재, 좋아?”
분신을 박으며 수혁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여 댔다.
녹아내릴 것 같은 목소리였다.
“좋냐고. 말해 봐. 내 좆이 그렇게 좋아?”
“으응! 아, 앗! 아, 아! 아! 좋아! 좋아, 빨리, 빨리!”
잔뜩 젖어 질척거리는 안쪽으로 수혁의 분신이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삽입은 처음인데도 조금의 거부감도 없는 자신의 몸은 마치 정수혁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반응했다.
윤재는 제 입이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더 세게 박아 줄까? 응? 그럴까, 윤재야?”
“앗, 아, 응, 하읏, 읏! 더 세게, 박아, 하읏!”
짧은 신음을 헐떡이며 윤재가 수혁의 움직임에 맞춰 허리를 흔들었다.
흔들리는 허리와 엉덩이가 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뜨겁다.
제가 꽉 매달려 있는 수혁의 어깨는 땀으로 미끈거렸다.
좁은 차 안, 에어컨을 틀어 놨지만 소용이 없다.
그만큼 맞닿은 살의 열기가, 내뱉고 있는 숨의 열기가 뜨거웠다.
“응, 하읏, 읏, 아, 앗!”
고개를 젖힌 채로 수혁의 목을 끌어안은 윤재가 소리를 질렀다.
“아! 아아!”
귓가에 번지는 수혁의 숨소리도 거칠었다. 누구의 숨이 더 거칠다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허벅지를 쥐고 있는 수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제 허벅지를 꽉 눌러 오는 남자의 손힘을 느끼며 윤재가 몸을 떨었다.
“으윽!”
귓가에 짧은 비명 같은 신음이 터지며 수혁이 움직임을 일순간 멈췄다. 그리고 제 안으로 뜨거운 것이 퍼지는 것을 윤재는 느낄 수 있었다.
“안에다 싸지 말라고 했잖아.”
처음부터 조건을 무시한 이 미친 개새끼를 어쩌면 좋을까.
“싸지 말라고 했잖아, 정수혁.”
“너무 좋아서.”
조건을 어긴 주제에 수혁은 뻔뻔하게 대답했다.
허리를 잘게 흔들며 수혁이 윤재의 땀으로 얼룩진 뺨에 키스했다.
“서윤재가 너무 조여서 싸 버렸어. 조금만 덜 조였으면 나도 조절이 가능했겠지만 어쩌겠어. 그렇게 조여 대는데.”
“빨리 빼.”
윤재가 제 위에 올라탄 남자를 밀어냈다.
조수석에서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간 수혁이 좌석의 레버를 당겨 그녀의 옆으로 좌석을 내렸다.
수혁도, 윤재도 땀투성이였다.
차 안은 열기와 함께 음란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 속에서 윤재가 숨을 헐떡였다.
아직 거친 숨이 가라앉지 않았다.
가랑이 사이에서 미지근한 것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수혁이 약속을 어긴 흔적이 가랑이의 안쪽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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