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어 드는 밤 - 4화 네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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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어 드는 밤 - 4화 네 번째 이야기

M 망가망가 0 2725

젖어 드는 밤 - 4화 네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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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이야기






빈소 안으로 들어온 서정무가 소예의 앞에 앉았다.




“어머님.”




제 앞에 앉은 서정무 때문에 소예의 전신에 두려움이 왈칵 내려앉았다.




너무 무섭다.




‘나를 죽이려고 온 것일까.’




“오늘 밤에는 둘째의 빈소에 불이 밝습니다. 오늘 사람이 죽었으니 먼저 죽은 사람에게는 다들 관심이 멀어지나 봅니다. 다 그렇잖습니까. 그래서 개똥밭에 구르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낫다는 말이 나왔겠지요.”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십니까?”




“어머님, 제 아버지의 빈소에 아들이 오지 못할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소자는 효자인지라 아버지께서 그리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신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그 탓에 어머님께서는 팔자에 없는 과부가 되시고.”




대체 이 사내는 왜 여기까지 온 것일까.




이 사내가 이 밤에 여기까지 온 이유는 하나뿐일 것이다. 집안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서정주의 빈소에 쏠려 있을 때 자신을 죽이려는 것이 분명하다.


자신을 죽이고 난 후에는 서정우를 죽이려 들까. 그렇게 해서 서권주가 남긴 모든 재산을 전부 독차지하려고?




사람의 욕심이 참 무섭다.


재산의 절반만 받아도 그것으로 다시 장사를 해서 몇 배의 재산을 모을 수 있는 사내가 왜 이렇게 재산 전부를 차지하지 못해서 안달이 난 것일까.




“어머님, 제 이야기 좀 들어 보십시오.”




서정무가 서늘하게 웃으며 손깍지를 꼈다.




“저는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아버지를 쫓아다니며 일찌감치 장사를 배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버지 혼자 힘으로 이렇게 자수성가해서 재물을 모았다고 하지만, 지금 아버지의 재산을 만든 것에는 제 노력도 절반 이상 들어갔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전쟁터에 나가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피 묻은 칼과 갑옷, 창과 방패를 주워 와서 그것을 되파는 일을 했습니다. 그것으로 아버지의 재산을 불렸지요. 아버지께서 말년에 집에 들어앉으셨을 때도 장사를 대신한 것은 저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머님. 아버님께서는 창고의 열쇠를 둘째에게 주셨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고생한 제가 아니라 집에서 놀고먹던 둘째에게 말입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서정무의 목소리에는 서늘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제 아우는 말입니다, 창고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이 집 재산을 전부 가진 것처럼 거들먹거렸습니다. 제 처와 아이들이 비단으로 옷 한 벌을 지으려고 해도 쉽게 내주지 않았습니다. 전부 제가 번 것인데도 말입니다. 


벌기는 전부 제가 벌었는데 집안에서 주판알만 튕기고 있던 놈이 마치 전부 제 것인 것처럼 굴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죽이셨나요?”




소예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그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서정무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는 모습이 소예는 너무 무서웠다.




“죽이지 못할 이유가 있나?”




서정무가 본색을 드러냈다. 그가 웃을 때 드러나는 하얀 이가 소예는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조금 전부터 그는 손으로 뭔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것이 작은 칼이라는 것을 소예도 모르진 않았다. 다만 모르는 척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제 저도 죽이려는 건가요? 저는 사흘 후에 떠날 거예요. 재산도 필요 없어요. 그냥 떠날 거예요.”




“떠난다고? 떠나는 것은 좋지. 나도 네가 떠나기를 바랐고. 그런데 말이야, 만약 사흘 후에 이 집을 떠났는데 한 달 후에 돌아와서 아이를 가졌다고 하면?”




“네?”




소예는 무척 당황했다.


지금 서정무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초야를 보냈을 테니까 그 안에 우리 아버지의 씨가 뿌려졌겠지. 그 몸 안에 말이야. 


지금은 모르겠지만 앞으로 보름만 지나면 확실해지겠지. 달거리가 시작되지 않으면 말이야. 


만약 네가 배 속에 있는 것이 내 아버지의 씨라고 주장하고 돌아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전부 빼앗기겠지. 단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말이야.”




서정무의 말이 맞다.


만약 자신이 서권주의 아이를 가지기라도 하면 이 집의 재산은 전부 자신의 것이 된다.


서권주의 아이를 가진, 그의 아내로서의 권리다.


하지만 소예는 서권주와 잠자리를 가지지 않았다. 잠자리를 가진 것은 그 사내뿐이다.




서정우.




소예가 몸 안에 품은 것은 서정우의 씨뿐이다.


하지만 서정무는 그것을 모른다.




소예는 내내 궁금했었다.


만약 자신을 매일 밤 찾아온 것이 서정우라면 서정우는 왜 밤마다 그런 짓을 했을까. 그 이유가 항상 궁금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이유가 문득 짐작이 갔다.




아이.


아이.


이 집의 재산을 전부 물려받을 아이.




자신이 아이를 가지면 이 집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게 된다.


서정무, 서정주, 서정우 삼 형제에게는 한 푼의 재산도 돌아가지 않고 자신과 자신이 낳을 아이에게만 모든 재산이 상속된다.


그것이 법이다.




서정우는 자신을 잉태시키기 위해 매일 밤 자신을 범했을 수도 있다.


아무도 자신이 서권주와 자지 않았다는 것을 모른다.


서정우는 어쩌면 그것을 알고 마치 서권주의 아이를 가진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자신을 잉태시키려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서정우가 얻는 것은 없다.


서정우는 그렇게 하면 그나마 상속받을 재산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이득을 보는 사람은 소예뿐이었다.


서정우는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리라.




자신을 위해서, 왜? 일면식도 없는데 왜?




소예는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여자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약속할게요. 아이는 가질 일이 없을 거예요. 만약 아이를 가졌다고 해도 아무도 모르게 키울게요. 약속할게요. 절대로 여기에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장사꾼의 덕목이 뭔지 알고 있나? 그건 사람들의 약속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는 거지. 가장 못 믿을 것이 사람의 약속이거든.”




서정무가 손에 쥐고 있던 칼을 소예의 앞으로 휙 던졌다.




“정주는 대들보에 목을 매달아 죽었으니 어머님께서는 이것으로 목을 찔러 자결하는 것으로 하면 좋겠습니다.”




소예가 겁먹은 눈으로 제 앞에 덩그러니 놓인 작은 칼을 쳐다봤다.


칼은 작았지만 예리하게 날이 서 있었다. 이것으로 목을 찌르기만 해도 죽을 것이 틀림없었다.




“제, 제발 살려주세요.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이니.”


“못 믿을 약속보다는 차라리 침묵하는 시체가 더 안전하게 믿을 수 있는 법. 스스로 찌르지 않으면 내가 찔러줄 수도 있는데, 어떤 것을 원하지?”




서정무가 금방이라도 칼을 집어 들 것처럼 서늘한 눈으로 소예를 노려봤다. 그 노려보는 시선에 소예는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몸을 떨었다.




죽고 싶지 않다. 


살려고 이곳에 온 것이다. 살려고 왔는데 결국 죽게 되었다.




‘죽고 싶지 않아.’




소예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속에서 올라오는 오열을 삼키자 그것이 뜨거운 덩어리가 되어 가슴에 맺혔다.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




울음을 꾹 참으며 소예가 칼을 집어 들었다.




이 칼로 서정무를 찌르면 어떻게 될까.


서정무를 죽일 수 있을까?


그를 죽이면 자신이 살 수 있을까.




서정무를 죽이면 사람을 죽인 죄로 극형에 처해질 것이다.


제힘으로 서정무를 죽일 수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무엇보다 서정무를 죽이면 자신도 죽는다.


자신은 서정무처럼 사람을 죽이고 자살로 위장시킬 능력이 없다.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말이다.




하지만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서정우뿐이다.


서정우가, 여기에 와준다면.


자신을 도와 서정무를 죽이고 자결로 위장하는 것을 도와준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절망감에 소예가 칼을 들었다.


칼을 쥔 그녀의 손이 덜덜 떨렸다.




“목을 찔러. 그러면 깨끗하게 끝나. 약속은 하지. 네가 죽으면 네 친정에 네 시체를 보내며 관짝 크기만큼의 궤짝에 은을 실어 보내기로 말이야. 


그래야 자비로운 서정무라고 소문이 나지 않겠어. 죽은 계모의 친정을 섭섭지 않게 챙긴 인자한 사내로 말이야.”




소예의 손에 들린 칼끝이 목에 닿았다.




‘내가 죽으면.’




죽기 싫다. 죽는 것이 무엇보다 무섭고 싫다.


하지만 자신이 죽으면 적어도 가족은 굶주림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신이 죽으면, 서정우는 슬퍼해 줄까.




칼끝이 목을 찌르기 직전이었다.




“마님?”




서주의 목소리에 소예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래, 그 사내가 있었다. 근처에 있을 테니 부르면 바로 오겠다던 그 사내가 있었다.




“마님,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빈소 휘장 밖에서 서주의 목소리가 울리자 서정무가 혀를 찼다.




“다리 저는 병신이 낄 데 안 낄 데를 모르는군.”




서정무가 휘장을 걷고 밖을 내다봤다. 서주가 마당에 서 있었다.




“지금 어머님과 이야기 중이니 물러가거라!”




서정무가 매섭게 소리치자 서주가 허리를 숙이더니 뒤로 물러났다.


서주가 마당을 나가고 휘장이 다시 내려오자 소예에게선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서주가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그것마저도 사라졌다.




“자, 어머님. 서두르셔야겠습니다. 형이 되어서 아우의 빈소를 지키지 않으면 사람들이 욕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서둘러 죽어주시면 제가 마음 놓고 아우의 빈소로 가겠습니다. 내일은 어머님의 빈소를 지켜야 하고… 모레는 셋째의 빈소를 지켜야 하니.”




서정무가 히죽 웃을 때였다. 소예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지금 서정무가 한 말에 충격을 받은 탓이다.




[모레는 셋째의 빈소.]




이 사내는 서정우도 죽일 작정이다.




“셋째 도련님도 죽이실 겁니까?”


“아니요. 아니요, 어머님.”




서정무가 히죽 웃었다.




“셋째는 벌써 죽었는데 어떻게 또 죽인단 말입니까.”


“뭐? 셋째가 죽었다? 서정우가 죽었다고? 그럴 리가.”


“이 집에 와서 셋째를 한 번이라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버님의 장례식 때라도 셋째를 보셨습니까? 순진한 어머님. 셋째는 어머님께서 이 집에 오시기 전에 이미 죽었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 서정우가 죽었을 리가.


서정우가 죽었다면 매일 밤 저를 찾아오던 사내는 누구란 말인가.


매일 밤 찾아와서 저를 범하고, 제게 다정한 온기를 주던 사내가 서정우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였단 말인가.




[셋째 도련님께는 전해 올렸습니다.]




서주는 대체 누구에게 자신의 말을 전했다는 것이지?


서주는 분명 자신의 부탁을 받아 서정우에게 자신의 말을 전했다고 했다.




서주는 대체 누구의.




‘설마……’




순간 소예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서주가 서정무와 한패였나?’




그런 것이라면, 서주가 실은 자신을 감시하고 있었다면.


자신은 그가 동향 사람이라고 믿었는데 실은 그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었다면.




“시간 끌지 말고 빨리 죽어!”




서정무가 소예의 손에서 칼을 빼앗았다.


그리고 그 칼로 소예의 목을 찌르려던 찰나,




“크윽?”




억센 팔이 뒤에서 서정무의 목을 졸랐다. 그 탓에 서정무의 손에서 칼이 떨어졌다.




“윽! 크윽! 윽!”




서정무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갔다.


그의 목을 조르고 있는 팔의 힘이 워낙에 거셌기 때문이다.




“크악! 으, 으, 으윽!”




그 팔에서 벗어나려고 서정무가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그 억센 팔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




소예가 서정무의 목을 조르고 있는 사내를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서주였다. 오른쪽 다리를 저는 사내.




“어떻게 할까요, 마님.”




서정무의 목을 조르고 있는 채로 서주가 소예에게 물었다.


얼굴이 시커먼 흙빛으로 변한 서정무의 입에서는 거품이 부글부글 흐르고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죽을 것이 분명했다.




“마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죽이라면 죽이고, 살리라면 살리고.”


“다, 당신이 왜.”




서주가 왜 저러는 것일까.


하인이 주인을 죽이면 극형이다. 서주는 왜 자신을 위해 서정무를 죽이려고 하는 것일까.




“마님, 지금 이 집안사람들은 전부 둘째 도련님의 빈소에 가 있습니다. 이 근방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마님께서 이놈을 죽이라고 하시면 이 자리에서 죽이고 우물에 던져 버릴 수 있습니다.”




“.”




소예는 입술만 벙긋거릴 뿐 아무런 말도 못 했다.




지금 서정무를 죽이면 자신은 살 수 있다.


하지만 나중에 들키면?




그가 사라지면 사람들은 분명 그를 찾을 것이다.


그러다가 그의 시체를 발견하면 자신을 의심하지 않을까?




서정무에게는 아내와 첩이 있다.


그녀들이 자신을 의심해서 집안을 전부 뒤져 그의 시체를 찾아낸다면 자신과 서주 역시 죽을지도 모른다.




“마님.”




서주가 다시 소예를 불렀다.


그와 서정무를 번갈아 보던 소예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죽여 버려요.”




그가 죽어야 자신이 산다. 그러니까 서정무는 죽어야 한다.


서정무는 이미 사람을 여럿 죽였다.


서정주를 죽이고 서정우도 죽였다.


어쩌면 서권주도 죽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서정무를 죽이는 것은 죄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위안을 삼으며 소예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정무의 눈은 이미 뒤집혀서 흰자위가 보이고 있었다.




“끄아아아아!”




서주가 팔에 힘을 주는 순간 서정무가 사람의 소리라고는 믿기 힘든 기괴한 소리를 질러대며 버둥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으드득.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며 서정무의 몸이 축 늘어졌다.


서주의 팔에 목이 졸린 채로 축 늘어진 서정무를 쳐다보며 소예는 덜덜 떨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은 것이다.




서주가 손을 풀자 서정무의 죽은 몸뚱이가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저, 정말…… 죽었나요?”


“네, 마님.”




묵묵히 대답을 한 서주가 일어서더니 그 시체를 등에 업었다.




소예는 그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 알지 못했다.


우물에 가져다 버리려는가 싶었다. 그러나 소예의 예상은 빗나갔다.


오른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서정무를 등에 업고 서주가 향한 곳은 서정무의 처소였다.


그의 처소에 그의 시체를 내려놓은 다음 밧줄을 꺼내 대들보에 매달더니 그 밧줄의 끝에 죽은 서정무의 목을 휘감았다.


그러자 서정무는 마치 스스로 목을 맨 사람처럼 대들보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그의 동생인 서정주가 그렇게 매달려 죽은 것처럼, 똑같이 매달렸다.




“이렇게 하면 자결한 것으로 보일 겁니다.”


“믿어줄까요? 이틀 연속으로 형제가 자살했다고… 누가 믿을까요.”


“믿지 않으면 어쩌겠습니까. 누가 죽였다는 증거도 없는데.”




서주가 묵묵히 대답하며 소예를 쳐다봤다.




“마님은 빈소에서 나오시지 않은 겁니다.”


“…네.”




“그냥 가만히 계시면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마님은 이 집에서 버티셔야 합니다.”


“네?”




이건 무슨 말일까.




소예는 더 이상 이 집에 있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이 집이 무섭다.


사람이 벌써 몇이나 죽어 나갔다.


서정우도 벌써 죽었다고 했다.


이 집은 사람을 죽이는 집이다.




“이제 이 집에서 남은 건 마님뿐입니다.”




서주가 소예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예전과는 달리 감정이 울렁거렸다.


서주가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담긴 감정이 무엇인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이제 이 집의 재산은 전부 마님의 것입니다.”




대체 이 사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마님과 마님이 낳을 아이가 이 집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아이. 자신이 낳을 아이.




소예가 문득 제 아랫배를 손으로 만졌다.




아이가 들어섰을까?




보름 이상이나 사내의 씨앗을 받았다. 만약 자신이 정상적인 몸이라면 분명 아이가 들어섰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는 누구의 아이일까.


서씨 형제들의 아이가 아니라면 누가 제 몸에 씨를 뿌린 것일까.


누가.




소예의 시선이 저를 바라보는 서주의 시선과 마주쳤다.




“설마.”




큰 체격.


험한 손끝.


말없이 묵묵한 사내.


저를 아는 사내.


항상 저를 지켜보고 있는 사내.




“당신이.”




이 사내였다.


소예는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매일 밤 자신을 찾아온 사내는 이 사내였던 것이다.


서주. 이 집의 하인.




“마님께서 아이를 가지셔야만 이 집안에서 살아남으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서주의 목소리는 그저 담담했다.




“저는 그저, 마님을 살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더는 그런 가난한 자리로 돌아가게 하지 않고, 이곳에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다른 욕심은 없었습니다.”




그 목소리가 거짓말로 들리지는 않았다.




목소리도, 표정도,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 * *






입술이 먼저 부딪쳤다.


사내의 더운 숨을 삼키며 소예가 사내의 입술에 제 입술을 겹쳤다.


사내도, 소예도 입맞춤이 서투른 탓에 그저 입술을 빠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입술이 닿은 것만으로도 이미 몸이 뜨거워졌다.




서툰 탓에 이가 부딪쳤다.


서로의 입술을 물었다 빨았다 놓았더니 젖은 소리가 울렸다.


혀를 얽으며 소예가 두 손으로 사내의 바지를 풀어 헤쳤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 단단한 음경이 붙잡혔다.


서주의 음경은 이미 단단하게 발기해 있었다.


늘 제 몸 안으로 들어오던 것을 소예는 처음으로 손에 쥐었다.


한 손에 다 쥐어지지도 않을 정도로 굵은 것이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꿈틀거렸다.




“마, 마님!”




소예의 행동에 당황한 서주가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소예의 행동이 더 빨랐다.


그의 사타구니 사이로 얼굴을 숙인 소예가 양손에 꽉 쥔 음경을 입에 물었다.




“흡.”




그의 음경을 입에 무는 순간 서주가 바짝 긴장하는 것을 소예도 느꼈다.


자신만 긴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내도 지금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소예의 입 안에서 사내의 음경이 점점 더 커졌다.




소예는 단 한 번도 사내의 음경을 입에 물어 본 적이 없다.


그동안은 항상 이 사내가 제 안에 음경을 쑤셔 박았을 뿐, 소예 스스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사내가 저를 원하는 것보다 소예 자신이 이 사내를 더 원했다.




‘오늘 밤은 위험하다’는 사내의 말을 무시하고 소예가 빈소로 이 사내를 끌어들여 무작정 그의 음경을 입에 삼켰다.


뿌리 끝까지 삼키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사내의 음경이 너무 컸다. 겨우 반절만 삼켰는데도 목구멍에 귀두가 닿았다.




“읍, 응, 응, 으읍.”




젖은 소리를 내며 소예가 사내의 음경을 빨았다.




그녀의 볼이 홀쭉해졌다 부풀어 올랐다.


입 안 가득 삼킨 음경을 빨며 소예가 눈을 감았다.




그녀의 머리 위에 사내의 손이 얹어졌다.


그 손이다.


항상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그 손이었다.




왜 몰랐을까. 서씨 형제들이 아니라 이 사내였다는 것을. 이 사내가 항상 제 주위에 있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이 집에 들어와서부터? 아니면, 예전에 고향에 살 때부터?


자신이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자신을 쳐다보기라도 한 것일까.




그건 나중에 물어봐도 늦지 않다.


지금은 이 상황이 더 중요했다.




“하아… 하아.”




굶주린 여자처럼 허겁지겁 서주의 음경을 빨던 소예가 얼굴을 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타액이 묻은 입술을 닦은 소예가 사내의 허벅지 위에 올라앉았다.




그의 위에 앉아 제 저고리의 옷고름을 풀었다.


저고리를 벗고 흰 소복 치마까지 벗은 소예가 사내의 위에 앉은 채로 속곳을 벗었다.


오롯이 알몸이 되어 사내의 눈앞에 제 젖가슴을 고스란히 드러낸 다음 사내의 손을 들어 그 손으로 제 가슴을 쥐게 했다.




이 집에 오기 전부터,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우물가에서 집으로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뭇 사내들이 군침을 흘리던 젖가슴이다.


잘록한 허리에 풍만하고 탐스런 젖가슴, 그리고 둥근 엉덩이. 그 나신을 온전히 드러낸 소예가 사내의 음경에 제 둔덕을 문질렀다.




바짝 성이 난 음경이 제 둔덕을 스칠 때마다 소예는 숨을 헐떡였다.


처음으로 눈을 가리지 않고 제대로 얼굴을 보고 하는 것이다.


저를 바라보는 사내의 뜨거운 시선을 마주하며 그의 위에 올라탄 소예가 한 손으로 그의 음경을 쥐고 그것을 제 구멍에 맞췄다.




“하윽!”




재갈을 물지 않은 탓에 그녀의 입술에서 뜨거운 교성이 새었다.


천천히 엉덩이를 내리고 앉자 아래에서부터 뜨겁게 달궈진 살덩어리가 그녀의 몸 안을 꿰뚫고 들어왔다.




“아아아아!”




뿌리 끝까지 완전히 들어선 것을 꽉 조인 채로 소예는 사내의 목에 팔을 걸었다.


손가락 끝에 도톰한 점이 만져졌다.




역시 이 사내였다.


사내의 손이 소예의 허리를 꽉 잡았다.




“마님!”




서주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소예의 귀가 화끈 달아올랐다.




보름 동안 이 사내에게 안기면서, 이 사내는 한 번도 저를 불러준 적이 없었다.


마치 벙어리인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저를 안았었다.


그렇게 거친 숨소리 하나 내지 않았던 사내가 지금 달아오른 얼굴로 저를 부르고 있다.


그것이 소예를 더 격하게 흥분시켰다.




잔뜩 젖은 몸 안으로 사내의 음경이 들락거릴 때마다 젖은 소리가 음란하게 울렸다.




“하윽!”




소예가 사내에게 매달린 채로 허리를 흔들었다.


엉덩이를 앞뒤로 흔들며 제 몸 안에 박혀 있는 사내의 음경을 꽉 조였다.


찌걱찌걱 소리를 내며 제 몸 안을 들락거리는 것이 그녀의 숨을 콱콱 막히게 만들었다.




“하응! 아! 아아아!”




사내가 그녀의 젖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더운 숨을 퍼뜨렸다.


사내의 단단한 이가 제 유두를 물어뜯고 젖가슴에 붉은 흔적을 내자 소예가 그런 사내의 목을 꽉 끌어안고 엉덩이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사내의 음경이 그녀의 안쪽 깊은 곳까지 푹푹 쑤셔왔다.


절구를 찧듯이 소예가 제 엉덩이를 내렸다.


위로 쳐올리는 사내의 음경과 아래로 내리는 그녀의 음문이 들어맞아 질퍽질퍽 소리를 만들어냈다.




“하읏! 아, 아아! 아앙! 하아아!”




소예가 원을 그리며 허리를 움직였다.


좌우로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몸 안에 들어찬 음경이 안쪽을 긁어댔다.




“흐아! 아아아!”




스스로 허리를 흔들며 사내의 살갗에 제 둔덕을 문지르자 음핵이 비벼지며 뜨거운 열기가 치솟았다.


소예가 정신없이 허리를 움직였다.




퍽, 퍽, 자신의 몸 안으로 사내의 음경이 끝도 없이 박혀 들어왔다.




“하읏! 아, 아아! 조, 좋아… 좋아. 더, 더, 더 세게. 하윽, 아, 아!”


“으윽! 윽!”




그녀의 숨소리만큼이나 사내의 숨소리도 거칠었다.


마구 쑤셔주기를 바랐다.


사내의 위에 앉아 소예가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녀의 벌어진 하문에서 음액이 줄줄 새어 사내의 음모 위를 흥건하게 적셨다.


사내의 검은 음모는 그녀의 하문에서 흘러나온 애액이 잔뜩 묻어 허옇게 질려 있었다.


그 위로 소예의 음문이 철퍽철퍽 내려앉았다.




“으윽!”


“아아아아!”




사내의 짧고 거친 숨소리와 함께 소예의 몸 안에 뜨거운 것이 쏟아졌다.




사정한 직후에도 사내는 소예를 끌어안은 손을 풀지 않았다.


음경을 뽑아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끌어안고 그녀의 안에 여전히 삽입한 채로 서주가 몸을 뒤집었다.




결합을 풀지 않고 소예를 엎드리게 만든 서주가 그녀의 얇은 허리를 붙잡고 다시 허리를 쳐올렸다.


벌거벗은 육체가 서주의 눈앞에서 흔들렸다.


얇고 잘록한 허리를 꽉 쥐고 둥근 엉덩이 사이로 시커먼 음경을 쑤셔 박으며 서주가 그녀의 등과 어깨를 물어뜯었다.




“아흐응! 아! 아!”




거센 몸짓에 소예의 몸이 앞뒤로 흔들렸다.


출렁이는 젖가슴이 찬 바닥에 뭉개졌다.


가슴을 찬기 가득한 바닥에 뭉갠 채 소예가 엉덩이만 들어 올렸다.


그렇게 들어 올린 엉덩이로 사내의 음경이 박혀 들어왔다.




“하읏! 아! 아!”




소예가 머리 위를 쳐다봤다.


엎드린 채로 사내의 음경을 받아들이던 소예의 몸은 지금 차가운 바닥에 누운 채였다.


사내가 그녀의 자세를 다시 바꾼 것이다.




한껏 벌어진 다리 사이로 사내의 음경이 쉬지도 않고 찔러 들어왔다.


사내의 성난 음경은 시들 줄 모르고 기세등등했다.


두 번을 연거푸 사정하고도 사내의 음경은 여전히 단단하게 꿈틀거렸다.


그 음경이 몸 안으로 찔러 들어올 때마다 소예의 몸이 흔들렸다. 소예는 흔들리는 와중에도 머리 위를 쳐다봤다.




머리 위에 서권주의 위패가 있었다.


그의 위패와 그를 위해 꽂아 놓은 향이 새하얀 연기를 피워 올리며 위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흐윽!”




사내가 그녀의 젖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의 목에 팔을 두른 채로 소예는 고개를 젖혔다.


사내의 허리짓은 격렬해서 그녀의 전신을 뒤흔들어 놓았다.


사내의 음경이 들락거릴 때마다 소예는 황홀함의 극치를 느꼈다.


당장 나락으로 함께 떨어져도 좋을 만큼 짜릿한 쾌감이었다.


굵고 긴 음경이 그녀의 안을 들쑤셨다.




“아아아아!”




길게 신음하는 그녀의 위에서 사내가 ‘윽’ 하고 짧은 숨소리를 토해냈다. 그리고 그녀의 안으로 뜨거운 씨앗이 왈칵왈칵 쏟아졌다.


사내의 음경이 빠져나간 구멍으로 그 씨앗이 줄줄 흘러내렸다.


제 엉덩이를 적시는 씨앗을 느끼며 소예가 가쁜 숨을 헐떡이고 있을 때, 사내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젖가슴을 입에 물더니 빨고 씹었다.




저를 끌어안고 제 가슴을 씹어대는 사내의 등과 어깨를 두 손으로 연신 어루만지며 소예는 눈을 감았다.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조금 전에 자신들이 서정무를 죽였다는 사실조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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