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믿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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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믿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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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믿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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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꺼기. 껍데기만 남아있다. 하린이를 떠나보낸 후부터.




대학에 들어와 처음으로 사귄 여자에게 정말 더럽게 호되게 당했다.


야한 외모에 톡톡 튀는 성격을 가진 여자였는데 갑작스럽게 다가와서 번호를 물어보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놀러 가고, 같이 자고.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일이 벌어졌고 처음으로 여자를 알게 되는 나는 그 여자에게 푹 빠지게 되었다.




"야. 지환아. 그 여자 좀."




"지환아. 어제 네 여자친구하고 다른 남자하고 돌아다니던데."




"넌 왜 그런 여자를 만나냐?"




그 여자를 만날 때 내가 친구들에게 듣던 얘기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발랑 까진 년. 그게 그 여자였고, 이미 눈에 콩깍지가 쓰인 나에게 그런 말들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콩깍지가 벗겨질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엿 같은 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쓰레기가 내준 리포트를 쓰느냐고 밤늦게까지 도서관에 박혀있다가 겨우겨우 끝마치고 나가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




기다려 봐도 비는 그칠 줄은 모르고 결국 집까지 가기는 포기를 하고 그 여자의 자취방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전화도 없이 가서 놀라게 해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비에 젖어 뛰어가서 그녀의 자취방 문 앞에 섰는데.




"아흣~ 좋아.. 좋아~~ 자기야..! 더.. 더..!"




"흐흐.. 씨발.. 좆걸레, 갈보 년아!"




"아흥~ 좋아~ 더. 더 욕해줘.!"




"크크.. 진짜 걸레 같은 년.. 죽어라 이 씨발 년아..!"




이게 무슨 소리지.? 항상 내 밑에서 나를 위해서만 신음소리를 내던 그 여자의 목소리는 맞는데.




나는 지금 여기에 있고, 방안에서는 처음 듣는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퍽퍽 거리는 소리가 내 마음을 뒤흔들면서 처음 듣는 욕지거리에 좋다고 소리를 질러대는 그 여자의 목소리가 마치 먼 곳에서 들리는 듯 하다.


소리가 안 들리게 문을 살짝 열고 집안을 들여다보니 좁은 원룸에서 그 여자는 개처럼 엎드려서 그 남자의 자지를 받아들이고 있다.




"하.. 하아앙..! 좋아~ 좋아~"




"크크.. 씨발 년이 이렇게 좋아할걸. 왜 그리 튕겨? 이 개 같은 년. 넌 정말 타고난 창녀야 이 씨발 년아..!"




"맞아요.. 아앙... 으흥.. 창녀에요.."




그 남자의 폭언이 그녀를 자극하는지 창녀라는 말을 듣고도 몸을 떨면서 그 남자의 자지를 받아들이고 있다. 씨발.. 씨발..




"요즘 남자친구 생겼다던데? 이 씨발 년이 허락도 안 받고 네 주제에 누굴 만나? 이 갈보 년아..!"




욕이 안 들어가면 말을 못 하는지 그 남자는 그 여자. 아니 그년에게 지랄을 해가면서 엉덩이를 때리기 시작한다.




"하읏~! 죄송해요.. 죄송해요.."




"크크.. 그 씨발 놈하고는 자 봤냐? 자봤겠지. 크크.. 너 같은 발정 난 암캐가 미적지근하게 아직도 손만 잡고 다니진 않았을 테니까."




"잤어요. 그 씨발 놈하고 잤어요.. 하아앙.."




저 씨발 년이..




"어때? 좋았어? 그 씨발 놈 자지?"




"네~ 좋았어요. 그 씨발 놈 자지.. 볼 것도 없는 놈이었는데 자지는 아응.. 꽤.. 괘, 괜찮더라고요.. 하응 거기.."




"어쭈? 이 년이. 씨발 년아 그 씨발 놈이 좋냐. 아니면 이 서방님이 좋냐?"




"하응~! 그런 걸 왜 물어요?"




"이 씨발 개 좆같은 년이 물으면 대답해! 이 똥갈보 년아!"




그 개새끼는 더욱 그년의 보지를 쑤쎠 가며 엉덩이를 세게 때린다.


그녀의 탄력 넘치던, 내 자지만을 받아줄 것 같았던 엉덩이가 푸들푸들 떨리면서 새빨개진다.




"아악..! 아파요.. 자기야 아파..!"




"대답을 하라고 씨발 년아!!"




그 개새끼는 흥분했는지 소리를 질러대면서 화를 내기 시작했고 그녀는 당연히 자기라면서 내가 아닌 그놈을 추켜세우기 시작했다.


그 개새끼는 만족해하면서 그년의 보지를 쑤시기 시작했고. 그렇게 한참 동안 그 연놈들의 섹스는 계속되었고, 난 비참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내 첫 여자였던 그 씨발 년을 떠나보냈다.


다음 날 헤어지자는 내 말에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왜 그러느냐면서 가식적인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려댔지만.




"씨발.. 똥갈보 년이라면서. 네 년."




이미 전날 밤에 그 남자에게 깔려서 자기는 창녀라고 소리를 질러대던 그년의 진짜 모습을 보고 나니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처음 사귄 여자에게 그렇게 호되게 당하고 나니 난 도저히 여자라는 존재 자체를 믿을 수가 없었다.


물론 여자보다야 남자가 그런 쪽은 더하겠지만도, 어차피 그거야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그렇게 난 충고해주던 친구들 보기도 민망하고 더 이상 그년과 함께 다니던 캠퍼스를 거닐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입대를 결심했고, 그렇게 군대에서 2년을 구르다 전역했다.




군대에서 까이고 구르고 짓밟히다 보니 그년의 대한 엿 같은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 갔고 전역할 때쯤에는 그년에 대한 모든 기억을 내 안으로 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복학했고 조금은 철이 든 나 자신이 뿌듯했다.


장학금을 목표로 새벽까지 공부를 하고 시간 날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바쁘게 시간을 보내는데, 어느 날 친구 병식이가 불쌍한지




"야. 지환아. 너 왜 그렇게 힘들게 사냐?"




"뭐? 내가 사는 게 어때서?"




"너.. 아니다.. 아니.. 너.. 에휴~ 그렇게.."




병식이는 내가 어떻게 군대에 갔고 왜 그렇게 바쁘게 생활하는지 모든 걸 알고 있는 놈이었다.


말을 하다 말다, 하다 말다 하면서 결국 병식이가 그년 얘기를 꺼내면서 내 속을 뒤집는다.




"야.. 씨발.. 너 진짜.."


"알았다고. 아 미안. 난 그냥.. 쯥.. 알았어.."




겨우겨우 눌러 담아 보이지 않게 숨겨두었던 그년이 다시 고개를 불쑥 내밀려 한다.




병식아. 이 병신아. 나 좀 내버려 둬.




병식이가 미안한 눈으로 쳐다보며 소개팅 얘기를 꺼낸다.


하지만 아직 그년 때문에 생긴 여자라는 존재의 불신이 여전해 거절하지만 한 번 만나보기나 하라고 진짜 좋은 여자라고 유난을 떠는 바람에 알겠다고 대답을 해버린다.




눈처럼 새하얀 피부를 가진 그녀는 눈에 확 띄는 미모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병식이 놈 말대로 정말 착하고 순수해 보였으며 그년과는 정반대의 성격에 조용하고 차분하면서도 착했고 난도질당한 내 가슴을 보듬어줄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첫눈에 끌린 하린이와의 만남이 지속될수록 난 그년이 남긴 상처와 여자들에 대한 불신이 점점 사라져갔다.




처음 하린이의 손을 잡은 날 그녀가 얼굴을 붉힌다.


처음 하린이에게 키스를 한 날 그녀가 얼굴을 붉힌다.


처음 하린이가 가슴을 허락한 날 그녀가 얼굴을 붉힌다.


처음 하린이의 엉덩이를 만진 날 그녀가 얼굴을 붉힌다.


처음 하린이의 옷을 벗기고 섹스를 나눈 날 그녀가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처음이 아니었고, 그게 나한테 미안했는지 내 정액을 받아놓고서 내 품에 안겨서 펑펑 울어댄다.




"오빠.. 흑.. 흑흑.. 정말 미안해.. 나.. 정말 더럽지..?"




요즘 세상에 처녀가 있긴 한 걸까? 요즘은 중학생만 돼도 처녀 딱지를 뗀다는데.




그런 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나인데, 미안해하는 그녀에게 내가 더욱더 미안해진다. 울고 있는 그녀의 작은 어깨를 감싸 안아준다.




"하린아.. 괜찮아. 오빠, 그런 거 신경 안 써.. 정말이야."




"흑흑. 나. 진짜 오빠한테 너무 미안해. 흑. 오빠하고 만나면서도 오빠 속이는 것 같고. 정말로 계속 말하려고 했는데 오빠가 나 버릴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웠어."




말을 하면서 계속 더 커지는 그녀의 떨림과 울음소리에 내 가슴이 미어질 것 같다.




"하린아. 오빠는 정말 그런 거 신경 안 쓴다고."




그 후에 하린이에 대한 사랑은 더 커져만 간다.


내게 처음을 주지 않았다고 더욱더 하린이는 나에게 헌신적으로 대했고 그런 하린이를 다독이면서 우리의 사랑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그렇게 우리는 추억을 만들어간다.




하린이가 고향에 내려간다고 만나지 못한 일요일.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인 진우를 만나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술이 거나하게 취한 진우가 나를 붙잡고 좋은 곳이 있다면서 자꾸 나를 붙잡아댄다.




"아~ 참 거 일단 따라와 보라니까."




"아~ 진짜 이 새끼야. 나 여자친구 있다니까."




술이 거나하게 취하고 좋은 곳이 있다면서 끌고 가려는 곳은 한군데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하린이를 배신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는 계속 거절한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배려?를 계속 거절하기도 힘들고 해서 나는 결국 진우를 따라나섰다.




"야.. 뭐냐?"




진우를 따라간 곳은 서울 외곽에 있는 오피스텔이었다.




"뭐긴 뭐야. 좋은 데지. 히히."




무슨 오피스텔을 데려와 놓고 좋은 데라고 지껄이는 그놈이 참 한심했다. 자기가 사는 곳에 데려와 놓고 뭐 좋다고.


이럴 거면 차라리 포장마차에 가서 한 전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을 할 때쯤 진우가 내 손목을 잡고 끌어 오피스텔로 들어간다.




들어와 보니 역시 그냥 오피스텔이다. 여기가 뭐 좋다고.


마음속으로 하린이를 배신한다는 생각에 꺼림직했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찰나에 어떤 중년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말을 건다.




"아이고~ 황 사장님~ 왜 이렇게 오랜만이세요? 허허."




진우를 황 사장님이라고 부르며 허허대는 중년남성을 보고 어리둥절해 있는데




"하하. 요즘 사업이 바빠서 영. 오늘 간만에 친구 만나서 여기 구경 좀 시켜주려고 데려왔는데 유리 있죠?"




"허허. 유리 있죠. 유리로 넣어 드릴까? 우리 친구분은?"




"아 유리는 이 친구 넣어주고, 전 세라로 넣어주시죠."




유리, 세라? 사람 이름을 말해가면서 중년 남자와 하하거리는 진우를 보니 눈을 찡긋거린다.




"야. 지환아. 네 성격에 이런데 와본 적이 없을 것 같아서 이 형님이 인심 한번 쓴다. 여기 유리라고 에이스거든. 와꾸는 그냥 그럭저럭 괜찮은데 마인드가 아주 기가 막히거든. 크크."




"뭐?"




"아유~ 이 순진한 새끼. 쯧. 아무튼 김 부장님 따라가라."




등을 떠밀어가면서 부추기는 진우 때문에 김 부장이라는 중년 남자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허허. 이런 곳 처음이신가 보네요?"




"네? 아.. 네, 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김 부장이라고 불리는 남자를 따라가니 그 남자는 내 표정을 보면서 말을 걸어왔고 좋은 친구분 두셨다면서 유리 얼굴 보기 참~ 힘들다면서 운이 좋다며 떠벌린다.


402호라고 붙여져 있는 문을 열면서 김 부장이 말한다.




"좋은 시간 보내시고. 끝나기 10분 전에 벨이 울릴 겁니다. 그럼, 아가씨 금방 넣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혼자 방안에 들어와 멀뚱히 서 있는데 바깥에 평범한 오피스텔과 같은 모습과는 달리 방안은 화려하게 꾸며져 호텔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침대에 작은 냉장고에 거기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나뉘어 있는데 샤워실에는 목욕탕에서 볼 법한 때밀이 침대까지 갖춰져 있었다.




"아.. 씨발.. 괜히 따라왔나? 하린아.. 젠장.."




그렇게 속으로 하린에게 미안해하며 마음속 한구석에는 약간의 야릇한 기대가 고개를 쳐든다.




"그래.. 하린이한테 더 잘해주면 되지. 이번이 마지막이야. 처음이자 마지막. 처음이자 마지막. 긴장하지 말자."




그렇게 속으로 최면을 걸듯이 나 자신을 다독였고 다시 한번 방문이 열리면서 여자 하나가 들어온다. 나는 이상하게 쪽팔린 마음이 들어 고개를 푹 숙인다.




"오빠~ 안녕?"




... 처음 본 남자에게 오빠 소리를 해가면서 콧소리로 애교를 부려오는 그 여자의 목소리에 내 자지가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아직도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데 여자가 옆으로 와서 팔짱을 끼고 젖가슴을 팔에 문대면서 웃는다.




"호호~ 오빠 되게 순진."




그녀가 말을 하다 만다. 왜 그런지 의아한 나도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본다.




순간 머릿속이 텅 빈 것만 같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그녀의 얼굴만 쳐다본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오늘 고향에 내려간다고 하지 않았어? 아닌가? 하린이가 아닌가. 그냥 닮은 여자인 건가.


근데 왜 하린이를 닮은 여자가 나를 보면서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 그녀는 그냥 하린이를 닮은 여자일 뿐인데.




"오, 오빠."




하린이다. 하린이가 맞다. 콧소리를 내면서 애교를 부리던 목소리에서 내가 알던 그 목소리로 바뀐다.




'씨발. 내, 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그 착하고 순수해 보였던, 처녀가 아니라며 미안해하며 펑펑 울던 그 하린이가, 그렇게 나한테 헌신적이던 그 여자가 지금 이러고 있다.




하린이가 눈물을 흘린다. 나도 눈물을 흘린다.


한참을 서로를 마주 보며 울다가 하린이가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한다.




나는 하린이를 안아줄 수가 없다.


하린이를 처음 가진 날 울었을 때 하린이를 안아줬듯이 안아줄 수가 없다.


그렇게 하린이는 통곡하듯이 울다가 갑자기 울음을 뚝 그치더니만 나를 보며 웃는다.




"오빠. 흑. 이런데 처음인가 봐?"




"..?"




"오빠, 되게 멋지게 생겼는데?"




하린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내던 콧소리를 내며 나에게 말을 건넨다. 갑자기 왜 이래 하린아..




"헤헤. 오빠 내가 오늘 서비스 잘 해줄게."




하린이가 갑자기 일어나 옷을 벗기 시작한다.




"진짜 오빠 애인처럼 똑같이 해줄게."




나는 옷을 벗고 있는 하린이를 쳐다보다 몸을 일으킨다.




아직도 눈물이 맺힌 눈으로 하린이를 쳐다본다. 지금 하린이는 내 눈에서 뭘 보고 있을까.? 나는 어떤 눈으로 하린이를 쳐다보고 있는 걸까.


말을 해보려고 하지만 말하는 것을 잊어버린 듯, 성대가 없어져 버린 듯, 목이 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나를 보며 눈물을 흘리며 웃어 보이는 하린이를 두고 몸을 돌려서 밖으로 나간다. 하린이가 뒤에서 말을 건다.




"오빠.. 흑흑.. 어디가?"




"..."




"오빠.. 나 유리야.. 하린이 아니거든.. 유리거든.."




"..."




"오빠.. 흑흑.. 오빠.. 나 유리라고!! 오빠가 아는 그 여자 아니고, 유리라고.. 흑흑.. 하린이 아니라고. 유리라고..!!!"




울부짖으며 유리라고, 하린이 아니라고 외치는 하린이를 두고 나는 밖으로 나온다.




씨발.. 하린이, 하린이가 아니라 유리라고.. 씨발..




눈이 시뻘게져서 계단을 타고 내려오니 김 부장이라는 개새끼가 눈에 보인다.


저 새끼가 그 순진한 하린이를 꼬셔서 이런 데서 더러운 일을 시키고 있는 거야. 이 개새끼.!




나는 어리둥절해 있는 김 부장의 면상에 냅다 주먹을 꽂는다.




합의금을 물어주고 경찰서 밖을 빠져나온다. 한숨만 내쉬며 나를 쳐다보는 부모님을 볼 면목이 없다.


그렇게 김 부장의 면상에 주먹을 꽂아버리고 유치장에 갇혀 있다가 부모님이 찾아오셔서 겨우겨우 합의를 보았다.


부모님이 대체 왜 그랬냐고 묻지만, 할 말이 없다.




"에휴.. 정말.."




말이 없는 나를 보며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자취방으로 향한다.


하린이에게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다.


하린이의 자취방으로 향한다. 그녀의 방은 텅 비어있다.


그녀의 친구들을 만나보지만 하린이의 행방을 알 수가 없다.




유치장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하린이를 그렇게 만든 건 나다. 내가 그곳에 찾아가지 않았으면 하린이는 그 깨끗한 모습 그대로 언제까지나 내 곁에 남아있었을 것이다.




하린이는 그대로다. 더러운 건 나다. 그녀의 믿음을 배신하고 그런 곳에 찾아간 내가 더 더럽다.


나 같은 인간들이 하린이를 망쳐놓은 것이다. 내가 하린이를 더럽힌 거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나는 하린이를 사랑한다. 그런 곳에서 일했던 아니던, 나는 하린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다.


하린이가 보고 싶다. 하린이의 얘기를 듣고 싶다.


그런 곳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쾌락에 몸을 맡겨 가랑이를 벌린 그 첫 번째 여자하고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그녀를 찾아야 한다. 하린이를.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하린를 찾아보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하린이는 내 가슴이 커다란 못을 하나 박아놓고 떠나가 버렸다.


지금 그 못은 녹이 슬어 뺄 수조차 없게 변해있다.




가끔 만나는 진우는 아직도 내게 묻는다. 대체 그때 왜 그런 거냐고.


하지만 나는 말하지 않는다. 하린이와 나만의 비밀. 아마 죽을 때까지 말할 수 없겠지.




나는 찌꺼기. 껍데기만 남아있다. 하린이를 떠나보낸 후부터.




그렇게 또 몇 년이 흘렀다. 그녀가 박아놓은 못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그 못을 가슴에 둔 채로 살아왔다. 못을 박은 채 공부를 하고 졸업을 했다.


취직도 하고 결혼도 했다. 그런데도 이미 녹슨 못은 단단히 박혀 빠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응~ 으응.. 여보.. 사랑해요.. 사랑해요"




내 밑에서 아내가 사랑한다며 속삭인다.




3년. 3년 전에 아내를 맞선으로 만나 결혼했지만 하린이가 남겨놓은 못 때문에 아내를 내 안으로 들일 수가 없다.


무표정하게 허리를 움직여 아내의 보지 안에 내 정액을 흩뿌린다. 일부러 그녀의 가임기에는 섹스하지 않는다.




아내는 착하고 헌신적이면서도 정숙했다.


마음을 열지 않는 나에게 언제나 그녀는 진심으로 대해왔고 사랑한다며 표현했지만, 그놈의 녹슨 못은 하린이를 잊지 못하게 통증을 보내온다.


하린이를 마지막으로 본 일요일 저녁에는 언제나 못이 덜컹거리면서 나를 힘들게 한다.




한숨을 쉬면서 내 옆에 누워 나를 바라보며 아내가 말을 건다.




"여보.. 저.. 우리 내일 같이 나가요."




일요일마다 집에 틀어박혀서 외식은커녕 온종일 누워있기만 한 나에게 그녀는 큰 투정 한 번 부리지 않고 잘 견뎌왔지만, 요즘에는 점점 힘이 드는지 이런 식으로 섹스 후에 부탁을 해온다.




"싫어."




언제나 그렇듯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아내에게 싫다고 말해버린다.




"네.."




저번에 끈질기게 부탁하던 것과는 달리 오늘은 싫다는 말 한마디에 수긍하면서 뒤돌아 눕는다.




"흑.. 흑흑.."




아내의 어깨가 들썩거리면서 결혼 후 처음으로 우는 모습을 보인다.


평소에 그렇게 냉랭하게 대해도 배시시 웃으며 미소만을 보이던 아내가 운다.


사랑하지는 않지만. 아니, 사랑해주지 못하지만 내 아내가 흘리는 첫 눈물을 보고 있으려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젠장.."




일요일마다 우울해지는 내 마음을 달랠 길은 그저 소파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을 쳐다보는 것인데. 젠장. 젠장.




"울지마."




아내에 눈물 때문이지 결혼 후 처음으로 아내에게 상냥한 말을 건네며 뒤에서 안아준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의 울음소리는 더욱더 커진다.




"으흑.. 흐윽.. 흑흑.. 흑흑.."




아내가 아기같이 울면서 몸을 돌려 안겨 온다. 어쩔 수 없지.




"알았어. 내일 나가, 나가자고."




"흑.. 흐윽.. 정말요?"




"그래. 나가자, 나가."




"헤헤. 여보 사랑해요."




울다가 웃다가. 아내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놀랄 정도로 표정을 금세 바꿔가며 안겨 와 사랑한다면서 매달려 온다.




아내와 밖으로 나가 외식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아내는 웃으면서 말을 걸어오지만 언제나 그렇듯 일요일 저녁이 되니 녹슨 못이 나를 괴롭힌다.




아내가 백화점에 가자는 말에 싫다고 할 수도 없어 알겠다고 말하며 따라간다.


아내는 기쁜지 웃으면서 팔짱을 껴온다.


백화점에 도착해 이것저것 살피는 아내.


아내는 웃으면서 이것저것 몸에 옷을 대보면서 어떠냐고 물어오지만 나는 괜찮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다.




아내가 입지도 않을 옷을 들춰보면서 살피다가 위층으로 올라가잔다.


위층으로 올라가니 아기 옷 매장이 보인다. 아기를 가지지 않는 나를 향한 소심한 반항이며 항변이다.


아내가 아기 옷을 살피면서 이거 너무 이쁘다 저거 너무 귀엽다며 호들갑을 떠는데 멀리서 한 가족이 다가온다.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고 있고, 여자의 손에는 귀여운 여자애의 손이 잡혀있다. 그 여자의 배는 임신을 한 듯 부풀어 올라 있다. 그리고 그 여자를 보았다.




그녀다.


내 가슴에 못을 박아놓고 떠난 그녀다. 하린이다.




그녀도 나를 본 듯 눈이 커진다.


나이가 들어서 예전과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나는 그녀를 본 순간 알아챘다.


순진한 얼굴로 얼굴을 붉히면서 울던 그녀.


옷을 벗으며 울부짖던 그녀의 얼굴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




그녀의 가족과 그녀. 하림이가 다가온다.




"엄마! 왜 그래?"




엄마? 그녀의 딸인가?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 소연이 배고프지? 빨리 밥 먹으러 가자."




결혼했구나. 벌써 저렇게 큰딸이 있구나.


그녀의 딸은 그녀를 닮은 것 같았다.




그녀가 나를 지나치며 눈동자를 마주쳐온다.


그녀가 눈으로 말을 걸어온다.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나도 말을 건넨다.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그녀의 눈빛에 가슴속에 박힌 녹슨 못에 녹이 떨어져 나간다.




그녀가 지나갔다 몇 년 만일까? 그렇게 찾아도 찾지 못했던 그녀를 이렇게 우연히 볼 수 있는 걸까?


그렇게 보고 싶었던 그녀였는데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다시 그렇게 떠나보낸다.




아기 옷을 살피던 아내가 나를 쳐다보며 말을 건다.




"여보~ 이 옷 예쁘죠? 예쁘죠?"




아내가 조그마한 아기 옷을 들어 보이며 나를 보고 웃는다.


이렇게 웃는 모습이 예쁜 여자였나.




그녀의 웃는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녀가 그런 내 모습에 의아하면서도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다.




"왜, 왜 그래요..?"




그녀의 수줍은 미소가 깊게 박혀있던 녹이 떨어져 나간 못을 조금씩 빼낸다.




"아니. 너무 예뻐서."




"..."




그녀가 말없이 눈물을 흘릴듯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만져준다. 그녀가 안겨 오면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사람 많은 그곳에서 울며불며 내 가슴을 때린다.




"흑흑.. 이.. 흐윽.."




아내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을 흘려가며 내 가슴을 때려온다.


그 손길에 박혀있던 못이 점점 더 빠져나온다. 울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들어 눈물을 닦아주고 손을 잡아준다.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빨리 가서 아기 만들자."




아내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끄덕이고 팔짱을 껴온다.




이제 거의 다 뽑힌 못을 잡고 빼 든다. 지난 몇 년간 나를 괴롭히던 못을 빼냈다. 지긋지긋한 놈.




못을 저 멀리 집어던진다. 못을 빼고 나니 그 못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과거와 집착.




못이 빠져나간 구멍에 바람이 들어온다.




과거와 집착이라는 못은 이제 내 가슴속에 없지만, 그 못이 남겨 놓은 구멍은 아마 영원히 없어지지 않겠지. 하지만 그 구멍의 이름은 못이 빠져나가자마자 생겨났다.




추억과 그리움. 이제 그녀에 대한 기억을 과거와 집착 대신 추억과 그리움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와 집착이라는 못이 남긴 추억과 그리움이라는 상처.




팔짱을 끼고 환하게 웃고 있는 아내를 쳐다본다. 뒤를 돌아 이미 보이지 않는 그녀의 눈동자를 생각한다. 


팔짱을 풀고 아내의 손을 꽉 움켜잡는다. 그리고 그녀를 놓아준다.




하린아.. 안녕.. 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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