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 계약 #14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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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계약 #14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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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계약 #14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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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언제부터 와 있었어요?”




“아까 통화하고.”






정혁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대고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때 바로 출발한 거예요?”






희민이 눈을 깜빡이며 묻자 정혁은 고개를 기울인 채 진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목소리를 들으니 참기 어려워져서.”




“…….”






담담한 목소리에 희민은 할 말을 잃었다. 잠시 가만히 그를 마주 보고 있던 희민이 다시 물었다.






“아까 통화 중에 본의 아니게 그쪽 소리를 들었는데 혹시 병원이었어요? 수액 맞는 것 같던데.”




“집이었어. 그 집에 주치의가 왔거든.”




“어디 몸이 안 좋아요?”






희민이 저도 모르게 빠르게 물었다. 그의 집에서 주치의를 본 적은 없었다. 


물론 자신이 그 넓은 공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다 알지는 못했다. 






'주치의가 따로 있을 정도로 건강이 안 좋은 건가?'






하지만 자신이 봤던 정혁은 항상 지나칠 정도로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 혼란스러웠다.


희민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는데 정혁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기적으로 혈액 체취를 해. 오늘은 좀 많은 양이 필요한 때라 오래 걸렸을 뿐 별다른 일은 아니야. 일상적인 거지.”






'일상적으로 혈액 체취를 하다니?'






그는 정말 별거 아니라는 듯 표정 변화가 없었다. 의문 어린 시선으로 보던 희민이 다시 말했다.






“그럼 피 뽑고 수액도 다 맞지 않고 온 거예요? 많이 뽑았다면서.”




“보다시피 멀쩡해. 어디 안 좋아 보이나?”






느른히 웃고 있는 정혁은 정말 더없이 멀쩡해 보이긴 했다. 


그냥 헌혈한 정도의 양인가? 그가 말하는 혈액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어 희민은 입술만 잘근거렸다.






“그럼…….”






조금 고민하던 그녀가 입을 여는데 마침 커피 두 잔이 도착했다. 


일단 말을 멈춘 희민이 자신 앞에 놓인 커피 잔을 매만졌다.






“방금 물어보려던 거 뭐였어?”






정혁이 그녀가 삼킨 질문을 다시 꺼내게 했다.






“……혈액은 왜 주기적으로 필요한 건데요?”






무척 개인적인 문제일 것 같아서 묻는 걸 주저했지만 이런 모든 걸 포함해서 서정혁에 대해 알고 싶었다.


정혁은 새로 나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희민의 질문에 대답했다.






“희귀 체질이라 혈액이 필요할 때 수혈을 받지 못해. 만일의 일에 대체하기 위해 내 혈액을 뽑아 놓는 거야. 그리고 검사를 위한 것도 있고.”






'희귀 체질?'






예상치 못한 말에 희민의 눈매에 힘이 들어갔다. 


수혈을 받지 못한다는 건 가벼운 종류는 아닐 거라고 짐작됐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당혹감이 그대로 드러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마주 보는 정혁의 눈빛은 담담했다.






“처음 만났을 때 물었지. 계약 상대가 왜 당신이어야 하냐고.”




“그랬……었죠.”






그의 저택에서 처음 만났던 날 그에게 했던 질문이었다.






그때 정혁은 제대로 대답해 주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궁금증이긴 했다.






“내 체질 자체가 말 그대로 희귀해. 해외에서도 거의 드문 케이스라고 의사에게 들었어. 그 체질로 인해 임신이 어렵고. 특정 유전자를 가진 여자가 필요한데 이 유전자가 여자에게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더군.”






정혁은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듯 건조하게 말했다. 지나치게 무감해서 지어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그 유전자를 가진 게 나라는 거예요?”




“맞아.”




“그렇다고 해도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게 된 건데요?”




“합법적인 방법은 아니었지.”






정혁이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미소 지었다.






“…….”






희민은 정혁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내가 그런 특이한 사람인 줄은 몰랐는데.”






그의 체질에 맞는 유전자가 그렇게 희귀하다는데 자신이 그 케이스에 속한다는 게 조금 신기했다.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두뇌 능력이 좀 뛰어났을 뿐 특별히 다른 신체적 특이함은 전혀 없었으니.






“당신이 특이한 건 아니야. 나에게 특별한 거지.”






서정혁에게만 특별한 케이스라는 건 지금 희민에게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방금 정혁의 말도 혹시 그녀가 스스로를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신경 써 주는 것 같았다.






“그때. 그 집에서 나오던 날 차 실장님과 대화하던 거 들었어요.”




“대화?”






정혁이 묻자 희민이 커피 잔을 매만지며 가만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일부러 들으려던 건 아니었어요. 원래는 다른 말을 하려고 당신 서재에 갔다가 우연히 듣게 된 거예요.”




“뭘 들었는데.”




“나보다 더 잘 맞는 여자를 찾았다고.”




“아아.”






그제야 알았다는 듯 정혁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나에게는 이미 한희민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나. 데려오지 않았어. 그 여자는.”






깔끔하게 결론만 말한 정혁이 거짓 없는 눈으로 바라봤다.






‘지금 안도한 건가. 나.’






희민은 그의 말에 자신이 내심 안심했다는 걸 느꼈다. 


정혁이 다시 나타났을 때 다른 여자를 데려오지 않았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완전히 믿진 못했다. 


그 저택에서 나온 뒤엔 계속 다른 여자가 자신처럼 그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더 자신이 소모품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지금 정혁에게 제대로 듣고 보니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럼 아이는 왜 필요한 거예요?”




“아이가 필요한 이유라…….”






정혁이 고개를 기울이고 생각에 잠겼다.






“이건 좀 설명이 긴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의 미간이 좁혀 들었다. 정혁이 진심으로 난감해하고 있다는 게 보이자 희민은 조금 의외라고 생각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대충 설명하면 되는 건데 뭘 저렇게까지 진지하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질문에 대해 정말 진지한 자세로 대답해 주려는 진심이 보여 안심도 됐다.






“그냥 간단하게만 말해 주면 돼요.”






희민이 가볍게 웃었지만 정혁은 여전히 설명할 말을 찾고 있었다. 사뭇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우선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후계 때문에.”






역시 그거였구나.






희민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럴 거라고 예상하긴 했다.






“결혼할 생각은 왜 안 한 건데요? 희귀 체질 때문에?”




“평범한 가정을 바라진 않았어. 지금까진.”






커피 잔을 매만지는 그의 말속엔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었다.






“…….”






그의 표정에서 가볍게 물을 얘기가 아니라는 걸 희민은 직감했다.


어쩌면 그에게 상처가 되는 일들까지 전부 다 이 자리에서 말하라고 들쑤시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 간다는 건 이렇게 모든 걸 한자리에서 말하라고 추궁하는 식은 아닐 거였다.






희민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다 말해 주네요. 묻고 싶은 건 다 물으라더니.”




“내가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 대답을 잘 하고 있는지는 자신이 없지만.”






정혁이 미소 지었다.






“얼마든지 물어도 돼. 최선을 다해 설명할 테니까.”






그의 얼굴을 보니 정말 이 자리에서 하루 종일이라도 원하는 만큼 다 설명해 줄 생각인 것 같았다.


지금 들은 것만도 가벼운 이야기들은 아니어서 희민은 고개를 저었다.






“우선 그만할래요. 묻기만 하니까 취조하는 거 같고. 배고파요, 나.”






희민의 말에 정혁은 곧장 시계를 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조금 이르지만 식사하러 가야겠군.”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해서 희민은 잠자코 그를 따라 일어섰다. 






조급해하지 않아도 어차피 하나하나 알아 가게 될 거고, 그러다 보면 이 남자에 대해서도 확실히 알 수 있게 될 거였다. 


정해진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조바심 부리지 않기로 한 희민은 정혁의 차에 올라탔다.






정혁은 희민에게 익숙한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데려갔다.






“여기 좋아하지.”




“좋아하긴 하죠. 비싸서 그렇지.”






희민은 오랜만에 온 격식 있는 장소에서 잠시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회사 다닐 때 승진하거나 중요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거나 하면 스스로를 축하해 주기 위해 오던 곳이었다.


워낙 요리가 맛있어서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하는 곳인데 이렇게 갑자기 올 수 있게 될 줄은 몰랐지만.






자리를 안내받고 직원이 매너 있게 의자를 빼 줬다. 


주 고객이 상류층인 만큼 이곳에 오는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테이블 간격이 무척 넓었다. 


인테리어 조형물과 와인 진열장을 센스 있게 배치해서 다른 자리가 잘 보이지 않게 배려한 것도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돼서 혼자 식사하러 와도 불편하지 않았다.






“내가 회사 다닐 때 좋아하던 곳까지 어떻게 아는 거예요?”






정혁이 주문을 마치자 희민이 물었다.






“차 실장 보고서에 있었어.”




“그런 것까지 보고해요?”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이 보고되어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런 사사로운 부분까지 보고됐을 줄은 몰랐다. 


정혁이 독특한 디자인의 물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내가 궁금했으니까.”




“네?”






물을 마신 정혁이 잔을 내려놓고 희민을 바라봤다.






“나와 맞는 여자를 찾은 건 처음이었거든. 그래서 그 여자가 궁금했어.”






똑바로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니 희민은 머릿속으로 의문이 떠올랐다. 






그땐 회사를 다닐 때였다. 그 사건이 터지기도 훨씬 전. 그럼 그 전부터 정혁이 자신을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게 언젠데요?”






희민이 의아함을 담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이 나를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지 궁금해서요.”




“그 유전자를 가진 여자를 찾기 시작한 건 오래됐어.”






정혁이 주문한 무알코올 샴페인을 희민의 잔에 따라 주며 말했다. 황금빛 액체가 좁고 둥근 잔에 찰랑이며 차올랐다.






“합법적인 과정이 아니라 더 오래 걸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니 포기할까 싶기도 하더군. 이 나라엔 한 명도 없는 게 아닌가 생각할 때쯤 차 실장이 보고서를 가져왔어.”




“…….”






정혁이 잔을 들어 올리자 희민이 가볍게 부딪쳤다. 싱그러운 향의 샴페인을 삼킨 정혁이 말을 이었다.






“이미 당신에 대한 모든 조사까지 끝낸 뒤의 보고서였어. 그때 당신 사진을 처음 봤지.”






말을 멈춘 정혁이 생각에 잠긴 듯 샴페인 잔을 응시했다. 그가 가만히 잔을 내려다보는 동안 희민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자신이 서정혁을 알지도 못했던 때에 이 남자가 먼저 자신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왠지 이상했다.






“그게 언제였어요?”




“5년 전쯤.”




“그렇게 오래?”






희민의 언성이 저도 모르게 조금 높아졌다. 그가 자신을 알고 있던 시간은 자신이 예상한 시간보다도 훨씬 더 길었다.






정혁은 담담히 말했다.






“맞는 여자가 나왔다고 바로 그런 계약을 준비한 건 아니야. 태아에 대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검사해야 하고, 임신 확률의 문제나 그 태아가 나와 같은 체질일 가능성 등 연구해야 할 것들이 있었어. 그게 아마 2년 정도 걸렸을 거야.”




“그럼 그동안 날 관찰한 거예요?”




“말했듯, 당신이 궁금했으니까.”




“…….”






정혁의 신비로운 빛깔로 빛나는 눈동자를 희민이 바라봤다. 희귀 체질 때문에 눈동자 색도 보통 사람들과 다른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 막상 실행할 때가 왔을 때 당신이 구속된 건 계획에 없던 거지만.”






원치 않은 방해를 받은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굳혔던 그가 표정을 바꿔 희민을 바라봤다.






“일단 식사부터 해. 좋아하는 요리를 앞에 두고 나한테만 관심 가져 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배고프다고 했잖아.”




“아, 네.”






희민은 그제야 손도 대지 않았던 접시들에 시선을 내렸다. 여전히 플레이팅 된 요리 하나하나 세련된 맛이었지만 희민은 맛보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거…….”






달칵.






희민이 갑자기 포크를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때 그 말 했잖아요. 잠자리 가진 여자는 내가 처음……이라고.”






괜히 주변을 살피며 소리 낮춰 하는 말에 정혁이 가볍게 웃었다.






“보지 않았나? 성에 눈뜬 사춘기 소년처럼 당신에게 완전히 미쳐 있었는데.”




“그, 그건 봤는데요. 궁금한 건 그게 아니라, 그럼 여자랑 밖에서 식사하는 것도 처음인가 해서요.”










정혁이 기다란 손가락으로 샴페인 잔을 매만지다가 말했다.






“여자와 식사하는 거 자체가 처음이야.”






그 말에 희민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웃었다.






“차 실장님은 여자 아닌가.”




“같이 식사 안 해. 남과 먹는 거 좋아하지 않아.”






그가 살짝 표정을 굳혔다. 정혁의 말이 거짓말 같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의 저택에서도 같이 식사한 적은 없었다. 술을 마신 적은 있지만.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는 의외로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일종의 친밀함도 포함되어야 하고. 이를테면…….”






설명하던 정혁의 미간이 좁혀 들었다.






“어쨌든 나에겐 좀 어려워. 업무상 어쩔 수 없이 여럿이 식사하는 자리도 선호하지 않고. 그러니까 여자와 단둘이 식사하는 것도 지금이 처음이야.”




“…….”






희민이 조용히 샴페인을 삼켰다. 알코올도 없는데 왜 취하는 기분이 들까. 


뺨에 열기가 오르는 느낌에 시선을 내리깐 그녀가 다시 포크를 집어 들었다.






“그래서 아까부터 내가 먹는 걸 보고만 있는 거예요? 당신도 좀 먹지 그래요.”




“아, 그래. 내가 불편하게 했군.”






가볍게 웃은 정혁이 그제야 포크와 나이프를 집었다. 하지만 음식엔 관심 없다는 듯 곧 포크를 내려 두고 희민을 바라봤다.






희민은 그의 시선을 모르는 척 애써 식사에 집중하려 했다. 


응시하는 눈동자에 점점 번지는 묘한 열기를 못 본 척 열심히 먹고 있었지만 괜히 포크를 잡은 손이 떨리는 것 같았다.








“음…… 하아…… 읍.”






어둑어둑한 희민의 아파트 주차장 차 안에서 야릇한 헐떡임이 새어 나왔다.






“하아, 그만……해요. 입술이 다 부었…… 읏.”






한창 물고 빨린 희민의 아랫입술을 물고 정혁이 낮게 잠긴 목소리를 냈다.






“부어서 더 자극적인데. 젤리처럼 말캉거려.”






이 주차장으로 들어온 지 이미 한참 된 것 같은데 시간이 얼마나 지난지도 모를 만큼 진하게 키스를 하고 있으려니 희민은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그만하라니…… 하, 아음.”






희민의 입술을 벌린 정혁이 촉촉한 혀를 휘어 감고 야하게 빨았다. 


혀 안쪽까지 끌어당겨져 빨리다가 예민한 점막을 훑을 때마다 희민은 오싹오싹한 쾌감이 일었다.






“키스라도 하게 해 줘. 하루 종일 이 입술만 떠올리고 있는데.”




“그치만…… 아, 음.”






희민은 거칠어진 숨결을 내쉬며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키스가 야릇해질수록 기분이 점점 이상해져서 자꾸 다른 걸 하고 싶어졌다.






‘나 정말…….’






이렇게 욕망에 약한 사람이었어?






희민이 숨을 삼키며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하지만 번들거리는 입술을 자극적으로 빨며 거칠어진 정혁의 숨결이 들릴 때마다 온몸이 미친 듯이 뜨거워졌다.


빨릴수록 선명해지는 자극과 살덩이가 엉켜드는 야한 소리가 다리 사이를 조여들게 해서 갈수록 버티기가 힘들어지고 있었다.






‘키스만 하고 있는데도 몸이…….’






정혁이 손도 대지 않은 젖가슴이 부풀 대로 부풀어서 브래지어에 압박되듯 꽉 차는 것 같았다.


바짝 곤두선 유두가 거친 숨결로 인해 브래지어에 쓸릴 때마다 아찔한 쾌감이 번졌다. 동시에 터질 듯한 욕망이 들끓었다.






“하, 하아. 아압…….”






정혁이 희민의 타액이 흘러내린 턱을 손으로 내려 입술을 더 벌리게 한 뒤 혀를 난잡하게 뒤섞었다. 


타액을 빨아 마시는 그의 움직임이 점차 거칠어졌다. 






희민은 이 남자의 혀가 자신의 젖가슴을 크게 베어 물고 세게 빨아 댈 때의 진저리 처지는 쾌감이 떠오르자 팬티 안이 축축하게 젖어 드는 게 느껴졌다.






못 참겠어!






희민이 정혁의 머리를 붙잡아 내리려는 순간 그가 입술을 떼어 냈다. 


얼굴 바로 앞에서 시선이 뒤엉키자 희민이 숨을 삼켰다. 


서로의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그의 입술에서 한껏 흥분한 사내의 숨소리가 거칠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욕망으로 새까맣게 물든 눈동자가 어두운 공간에 익숙해진 시야에 들어오자 희민의 심장이 터질 듯 빠르게 뛰었다.


관능적으로 젖어 든 그의 입술이 벌어졌다.






“……여기서 더 하면 못 멈출 것 같아.”






허스키하게 잠긴 목소리를 낸 정혁이 희민의 입술을 제 손가락으로 닦아 줬다. 


보풀아 오른 입술을 길게 쓸어 내는 그 움직임도 자극적이어서 희민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움켜잡고 있던 희민을 놔주고 운전석 쪽으로 멀어진 그가 숨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말했다.






“들어가. 들어가는 거 보고 갈 테니까.”




“조심히…… 들어가요.”






희민이 어지럽게 뛰는 심장을 누르며 차에서 내렸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 미러형 벽면에 잔뜩 부어오른 입술과 욕망으로 흐릿하게 번진 여자의 눈이 보였다.






“하.”






희민이 숨을 내뱉으며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몸 안의 열기가 진정되지 않고 점점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때 그가 멈추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아마 자신이 욕망을 못 이기고 그의 머릴 붙잡아 자신의 가슴으로 내린 뒤 결국 차 안에서 일을 치렀을 거였다. 


정말 그러고 싶었으니까. 


서정혁이 주는 쾌락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와 함께했던 4개월의 시간 동안 그녀의 몸은 완전히 그에게 길들여졌었다. 


체형도 바뀔 정도로 열락에 빠져 지내던 시간이 떠오르자 목구멍까지 뜨겁게 조였다.






“…….”






욕망의 불길이 고스란히 남은 거울 속 여자의 얼굴을 보던 희민이 손을 들어 도톰하게 부어오른 입술을 매만졌다.






‘아파.’






쓰라릴 정도로 빨린 입술이 그의 허기진 욕망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었다.






지금의 정혁은 분명 계약 기간 때 겪었던 그와는 달랐다. 


그땐 그의 말처럼 마치 막 성에 눈뜬 남자와의 육체적인 관계만 있었다. 


계약의 목적을 생각하면 그게 맞지만 그 시간 동안 자신의 감정이 변했듯 그도 변했던 걸까.






내가 아는 정혁은 이렇게 평범한 연인처럼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한 뒤 집에 바래다준 차 안에서 이성을 잃을 정도로 키스하다가 그걸 멈추고 들여보내는 남자는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정염으로 들끓는 눈동자를 하고서 놔주는 남자는 아니었다. 


지금의 정혁은 정말 그때와 다르다.






‘어쩌면 못 참는 건 그가 아니라 내가 될지도 모르겠어.’






희민은 진지하게 그런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어이없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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