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 계약 #6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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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계약 #6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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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계약 #6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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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처럼 붉고 화려하게 인테리어 한 뉴욕의 중식당 별실에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앉아 있었다. 


원형의 회전식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남자들은 삼사십 대로 보이는 두 명과 중년이 지난 세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값비싼 중국 명주로 다들 기분 좋게 술기운이 오를 때쯤 가장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말했다.






“이렇게 미국까지 오게 한 이유를 이제 슬슬 들어도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황구영이 먼저 운을 띄우자 다른 두 명도 표정을 바꿔 젊은 남자들을 바라봤다. 기대감이 실린 그들의 표정을 마주 보며 고승준이 싱긋 웃었다.






“물론 어떤 걸 기대하고 계신지 알고 있습니다.”






날렵한 안경을 끼고 호리호리한 체격을 가진 승준은 전형적인 엘리트의 외모였다. 


승준 옆에 앉아 있는 좀 더 나이가 있어 보이는 이인영 역시 비슷한 외모를 가졌다. 인영이 젓가락을 놓으며 말했다.






“마침 방금 도착하셨다고 하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정중한 말투였지만 나이 많은 남자들에 비해서 승준과 인영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의례적인 미소를 띠고 있는 그들의 빈틈없는 표정을 황 전무를 포함한 세양그룹 임원 세 명이 눈을 굴리며 살피고 있었다.






출장을 빙자해서 여기까지 비행기를 타고 온 그들에게는 나름의 목적이 있었다.


국내가 아닌 지구 반대편에서 만남을 가져야 할 정도로 이 사안은 예민했다. 


까딱하면 그들 인생 전체가 뒤흔들릴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매혹적인 조건이 제시되는 일이기도 했다.






세양그룹 임원들이 본격적인 대화를 앞두고 차로 입술을 축이고 있는데 별실의 문이 열렸다.






드르륵―






중국 황실의 전통 문양이 새겨진 문이 옆으로 열리고 차가운 인상의 여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팬츠형의 검은색 정장을 입고 날렵한 안경을 쓴 그녀가 들어서자 자리에 있던 남자들이 전부 몸을 일으켰다.






그들에게 다가온 여자가 곧게 선 자세로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태원그룹 회장실 직속 비서실장인 차영주입니다.”






차영주 실장을 처음 본 임원들이 서로 눈짓을 나눴다.






태원그룹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차 실장은 웬만한 회장급보다 만나기가 어렵다는 사람이었다. 


각종 추문이 있는 회장 대신 태원의 모든 일을 진두지휘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능력 있는 여자라고 들었다.






‘과연, 태원 회장의 대리인답군.’






황 전무는 빠르게 차 실장을 훑어보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소문처럼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냉철해 보이는 여자였다. 


웬만한 남자들보다 월등히 기가 세 보이기도 했다. 


지금도 황 전무의 시선을 조금의 눌리는 기색도 없이 똑바로 마주 보고 있었다.






“우선 앉으시죠.”






차 실장이 먼저 의자를 빼며 말하자 다들 자리에 앉았다. 앉으면서도 긴장되는 듯 타이를 매만지는 임원들을 차 실장이 빠르게 훑었다.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찻주전자로 자신의 찻잔에 차를 따른 그녀가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본인에게 박히는 긴장된 시선들을 신경 쓰지 않는 듯 조용히 차를 마시는 동안 다들 서로 눈짓을 하며 기다렸다. 


초조한 시선이 오가는 것을 인영과 승준이 말없이 보고 있었다.






탁.






찻잔을 내려놓은 차 실장이 그제야 시선을 올렸다.






“이곳까지 먼 걸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시겠지만, 우리가 이 자리에서 지금부터 나눌 대화는 굉장히 예민한 부분이라 국내에서는 이런 자리를 만들기가 힘들었던 점 이해 바랍니다.”




“괜찮습니다. 우리도 누구 귀에 들어가서 좋을 것 없다는 것쯤은 알고 나온 거니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차 실장은 미소 없이 대화를 갈무리하고 들고 온 브리프케이스에서 서류 세 개를 빼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승준이 얼른 몸을 일으켜 서류를 받아 들은 뒤 임원들에게 건넸다.






차 실장은 서류를 열어 보는 임원들을 표정 없이 보다가 찻잔을 들어 올렸다.






“회장님이 직접 제안하신 거니 천천히 읽어 보시고 결정하시면 됩니다.”






찻잔을 입술로 가져가는 차 실장에게 임원 중 한 사람이 물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결정하라는 말입니까?”






당혹스러운 얼굴의 남자에게 차 실장이 움직임을 멈추고 시선을 올렸다. 시선이 마주치자 남자가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니…… 그래도 이런 중요한 일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기에 질린 듯 남자가 어물거리며 눈치를 보는 사이 차를 마신 차 실장이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도장을 찍지 않으면 이 제안은 없는 걸로 하라는 회장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황 전무를 포함한 임원들이 난처한 시선을 나누는데 차 실장이 말을 이었다.






“세 분이서 의견 나눌 시간이 필요하실 것 같아 옆의 룸에 자리를 만들어 뒀으니 언제라도 상의하실 시간이 필요하면 이용하시면 됩니다. 다만,”








건조하게 이어지던 말을 끊은 차 실장이 찻잔을 느리게 매만졌다.








“그 제안서를 보시면 오래 고민할 문제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게 되시겠지만 말입니다.”






“…….”






차 실장의 말에 임원들은 그녀를 힐긋거리면서도 내심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서류로 시선을 옮겼다.








저 정도의 확신을 보일 정도라면 분명 그들이 기대하는 내용 이상의 조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서류를 빠르게 훑어 나가던 그들은 곧 원하는 대목을 발견했다.






“이, 이건…….”






저도 모르게 탄성 섞인 목소리를 흘린 황 전무의 눈이 커졌다.






태원의 소문을 알고 있어 어느 정도 기대를 한 건 사실이었지만 이 정도의 금액이 적혀 있는 줄은 몰랐다. 


그 부분을 확인한 임원들은 다들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찻잔을 들고 넌지시 보고 있던 차 실장이 물었다.






“상의하실 시간이 필요하십니까.”




“아, 아닙니다.”




“저도 괜찮습니다.”




“저도.”






혹여나 차 실장이 말을 바꿀세라 얼른 대답하는 그들을 확인한 승준과 인영은 조용히 시선을 교환했다.






***




뉴욕 중심부에 위치한 초고층 빌딩 안으로 차 실장과 비서진이 들어섰다. 


몇 번의 보안 인증을 통과한 그들은 전용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홍채 인식을 통과해야만 탈 수 있는 이 엘리베이터는 사방이 강화 유리로 시공되어 있어 높이 올라갈수록 뉴욕 전경이 내려다보였다.






지잉.






최상층 바로 아래층에서 문이 열리자 차 실장이 앞서 내렸다.






전체 외벽이 엘리베이터와 마찬가지로 유리로 되어 있어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인 구조였다. 


광활할 정도로 넓은 이곳은 회장인 서정혁이 사용하는 업무 공간이었다. 


오로지 회장실 직속 비서 세 명만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다.






익숙하게 소파로 걸어간 그들은 자리에 앉아 잠시 기다렸다.


이미 회사에 들어와 보안 센서를 통과한 순간 정혁에게 알림이 갔을 것이다. 


곧 그들이 타고 온 방향과 다른 곳에 위치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건 서정혁의 개인 생활 공간인 바로 위층과 연결된 엘리베이터라 비서진도 이용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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