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과 꿀이 흐르는 숲 6. 백호대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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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꿀이 흐르는 숲 6. 백호대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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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꿀이 흐르는 숲 6. 백호대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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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꽃잎 반점이 생기고 일주일이 지난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씻은 우림은 몸을 닦다가 꽃잎 하나가 사라진 걸 발견했다.




“두 개로 줄었어……?”




일주일 전부터 세 개로 늘어나 있었던 꽃잎 반점의 수가 다시 두 개로 줄어들었다. 어쩌면 평범한 문신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갑자기 없어질 줄은 몰랐다.




꽃잎 반점을 보면 무섭고 오싹하여 의식적으로 시선을 주는 걸 피해 왔던 우림은 생각에 빠져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살아 있는 꽃이 폈다가 지듯 몸 어딘가로 흡수되어 사라진 반점이 더없이 불길하게 느껴졌다.




우림이 무심코 손끝으로 반점을 톡 건드렸을 때였다.


달칵.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어?”




혹시 태오인가 하고 쳐다봤으나 문이 열리는 일은 없었다. 우림은 가운을 걸치고 문 앞으로 다가갔다.


달칵. 달칵. 뭐가 잘못된 건지 열어 보려고 해도 문고리는 계속 헛돌았다.




“갇힌, 거야……?”




우림은 숨을 조금 헐떡이며 욕실을 둘러봤다.




“백우림. 문 네가 잠갔어?”




똑똑. 거칠게 노크하며 태오가 문밖에서 소리쳤다.




“나 갇혔어요. 구해 줘요, 이사님…….”




우림은 안도하며 문에 대고 말했다.




“문에서 비켜.”




태오의 말에 우림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물러났다.




“비켰어?”




“네!”




달칵! 달칵! 달칵! 문고리가 사납게 돌아가더니 퍽 하고 문이 거칠게 열렸다. 힘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 태오가 멀쩡히 서 있는 우림을 쭉 훑어봤다.




“김 집사님께 비상 열쇠 있을 텐데…….”




“눈에 안 보이면 사고를 치는데 거기까지 언제 가?”




사고뭉치 취급에도 우림은 할 말이 없었다. 


우림은 원래도 크고 작은 사고가 잦았으나 최근에는 비정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그 빈도가 무섭게 늘어나 있었다.




“나 진짜 굿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부적 정도는 필요할지도 모르지.”




또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뭐라고 할 줄 알았던 태오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우림은 조금 신기해하며 욕실 밖으로 나갔다.




“아, 이사님……. 나 이거 두 개로 줄었어요.”




“알아.”




“알아요?”




“아침에 봤어.”




“보, 보셨구나…….”




요 며칠 우림은 태오의 옆에서 자고 일어났다. 


계속 붙어 있으니 우림과 태오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스킨십이 잦았다. 그제야 우림은 오늘 아침에도 태오가 목덜미를 물고 빨던 게 떠올랐다.




“안 이상해요……?”




“뭐가.”




“난 이상한데……. 귀신 씐 것 같잖아요…….”




우림이 손으로 목덜미를 살짝 가리며 웅얼거렸다. 주변에 자꾸 이상한 일이 생기는 게 이 반점 탓인 것 같아서 무섭고 두려웠다.




“이사님, 귀신 싫어하잖아요. 할아버지가 무당 찾는 것도 안 좋아했고.”




“싫어한 게 아니라 한심해한 거였지. 눈에도 안 보이는 걸 있다고 믿으며 헛짓거리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동안 우림은 태오에게 귀신을 봤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태오가 그런 걸 안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고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태오는 그 나름대로 우림이 신경을 쓰고 무서워할까 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럴 수는 없었다.




“지금은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네가 하는 말은 믿어.”




단호한 말투에 우림은 심각해하던 것도 잊고 옅게 웃었다. 태오와 함께 있으면 뭐든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 * *




덜컹! 최대한 조심한다고 해도 길이 험해서 차체가 크게 흔들렸다.




“뭐 이런 엿 같은 길이…….”




“으음…… 이사님?”




조수석에 앉아 깜빡 잠이 들었던 우림은 차 흔들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덜컹! 차가 또 크게 흔들렸다. 


앞으로 확 쏟아지는 우림의 몸을 팔로 지지한 태오가 한 손으로 운전대를 돌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거의 다 왔어.”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놓은 차 내부는 시원했다. 


우림은 구름처럼 몽글몽글한 극세사 담요를 이불처럼 두르고 있었다. 


잠들기 전에는 이런 거 없었는데 태오가 덮어 준 것 같았다. 몸은 따뜻하고 얼굴은 시원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스피커에서는 몽환적인 음색이 특징인 어느 여성 가수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우림의 플레이리스트와 연결된 것이었다. 


우림은 따라 흥얼거리며 태오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차가운 바람에도 식지 않는 뜨거운 체온이 부들부들한 담요를 데웠다.




“내려야 해.”




차는 제대로 된 주차장도 없는 노지에 대충 멈추었다. 목적지까지는 조금 더 가야 했지만 여기서부터는 길이 끊겨 차로는 갈 수 없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태오를 따라 내린 우림은 매미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을씨년스러운 여름 산을 둘러보았다. 


서울에서 고작 3시간 달려왔을 뿐인데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무당집.”




“무당……? 나 진짜 굿해요?”




“회장님이 자주 왔던 곳이라는데 처음 와 봐?”




“네. 처음 봐요.”




“아주 어렸을 때라 기억하지 못하는지도 모르지…….”




덜컹거리던 도로만큼이나 산길도 험했다. 


우림은 나름 운동 계열인 현대무용 전공인데 금세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후덥지근한 날씨도 한몫했다.




반면 태오는 커다란 가방을 하나 들고도 특기가 등산인 것처럼 가볍게 산을 올렸다. 


반팔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태오는 정장을 입었을 때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그는 앞서 길을 뚫으며 비틀대는 우림을 붙잡아 올렸다. 그럴 때면 우림은 팔뚝에 선명히 돋아나는 근육의 윤곽을 훔쳐보며 뺨을 붉혔다.




길이 험해서 그렇지 그렇게 많이 걸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우림의 발걸음으로 20분 정도 산을 오르자 대체 이런 곳에 어떻게 지었나 싶은 별장이 하나 나왔다.




“와…… 음…… 인테리어가, 독특하네요.”




영화에 나오는 귀신 나오는 집을 모티브로 한 건가 싶었다. 




별장은 헬기로 옮겨 산에 덩그러니 놓아 둔 것처럼 동떨어져 있었다. 


그렇게 홀로 우뚝 서 오랜 세월이 지난 갈색 목조 별장은 담쟁이넝쿨로 뒤덮여 어두운 밤에 보면 나무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위장술이 뛰어났다.




우림은 문 앞을 살펴보았지만 초인종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쿵쿵. 문을 두드려 보던 태오는 안에서 반응이 없자 그대로 문을 열었다.


끼이익. 오래되어 녹이 슨 문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냥 들어가도 되는 거예요?”




“들어오라고 열어 놨겠지.”




태오는 어깨를 으쓱이며 어둑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이고 복도고 할 것 없이 어두컴컴했다. 이 집에서 불이 켜진 방은 하나였다.




“신당 같은데요…….”




천장에는 온갖 색의 연꽃등이 매달려 있었고 벽면에는 살아 있는 붉은 생화가 한가득 피어 있었다. 


일렬로 길게 늘어진 촛대에서는 씁쓸한 향이 올라왔고 어른거리는 촛불을 머금은 신령의 조각상은 호통을 치는 듯 험상궂었다.




끼익. 끼익. 낡은 마룻바닥은 걸을 때마다 끽끽거리며 소음을 만들었다. 


신당을 둘러싼 모든 것이 오싹하고 기괴하게 느껴졌다. 우림은 부리부리한 조각상의 눈을 피하며 태오의 옷자락을 살짝 붙잡았다.




“이런 게 무서워?”




주위를 둘러보던 태오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우림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우림이 느끼는 불길함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그에게 이런 신단은 조잡하게 꾸며 놓은 소꿉놀이 장난감에 지나지 않았다.




“누구야?”




그때 기척도 없이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등학생이나 되었을까 싶은 단발머리의 소녀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지 눈을 감고 있는 소녀는 화려하기만 해 도리어 싸구려처럼 보이는 색동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밟을 때마다 끽끽거리는 낡은 마룻바닥은 소녀의 발밑에서만 조용했다.




“강 도사라는 사람을 만나러 왔는데.”




태오는 소리 없이 다가오는 소녀의 발밑을 흘긋 바라보며 말했다.




강 도사는 붉게 염색한 머리카락이 잘 어울리는 화려한 미녀라는 정보를 듣고 왔다. 눈앞의 맹인 소녀는 태오가 찾던 사람이 아니었다.




“엄마는 뒈졌는데.”




소녀는 입꼬리를 비틀어 웃으며 눈을 떴다. 눈동자 없이 허연 눈자위가 보였다.




“난 엄마랑 달라서 돈 별로 안 좋아해. 그래도 복채(卜債)를 내야겠다면…….”




눈자위만 남은 눈이 정확히 우림을 바라봤다.




“있지, 언니. 네 예쁜 눈을 내게 주는 건 어때?”




소녀의 허연 눈알은 손각시의 찢어진 입술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우림은 천적을 만난 피식자처럼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점쟁이들은 손님을 이렇게 받나?”




태오는 이깟 쪼끄만 꼬맹이한테도 겁을 먹는 우림을 기막혀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


러나 맹인 계집애가 나타난 뒤부터 태오 역시 이상하게 숨이 갑갑하고 불쾌했다. 코끝을 찌르는 향이 물안개처럼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까르르! 소녀는 입술이 찢어져라 웃으며 깔깔댔다.




“화내지 마. 장난 좀 친 거야. 돈으로 받지 뭐.”




소녀는 태오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는 짓이 제법 점쟁이 같았다. 


어차피 태오는 오늘 돌팔이에게 사기나 당해 보려고 온 것이었다. 수확 없이 헛걸음하느니 뭐라도 들어 보자는 마음으로 가방을 소녀에게 주었다.




가방 안에는 빳빳한 새 지폐가 가득 들어 있었으나 소녀는 별 관심 없다는 얼굴이었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이미 아는 듯, 혹은 어떤 것이어도 상관없다는 듯 가방을 뒤쪽으로 휙 밀어 놓은 소녀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꿀이 흐르는 달콤한 밀과이긴 해도 산군(山君)이 지키는 걸 누가 섣불리 탐내겠어…….”




소녀는 여전히 아쉬운 얼굴로 우림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욕정(欲情)으로 짙고 깊어진 혀가 뱀처럼 날름거렸다.




소녀는 아까부터 계속 우림만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아주 맛난 먹잇감이라도 된다는 듯 열렬한 시선에 우림은 목덜미가 뻣뻣해졌다.




“앉아요, 앉아.”




우림은 입술을 꼭 깨물고 먼저 자리에 앉았다. 피하기만 해서는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걸 그녀도 알았다.




“이게 뭔지 알아?”




우림은 머리카락을 젖혀 두 개로 줄어든 꽃잎 반점을 보여 줬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복숭아꽃이야. 누가 벌써 침 발라 놨네.”




“침을, 발라……?”




“귀문(鬼門)이 열렸어. 언니 산송장이나 다름없잖아. 언니처럼 기가 약하면 진작 귀신들이 완롱물로 썼을 텐데. 언니는 운이 좋아 내돌려지지는 않았지?”




“귀문? 내돌려……?”




“귀접당해서 허벌창 난다고.”




소녀는 엄지와 검지를 말아 동그라미를 만들고 손가락으로 그 구멍을 쑤시는 시늉을 해 보였다. 노골적인 신호에 우림은 아득함을 느꼈다.




빠드득. 옆에서 이를 살벌하게 가는 소리가 났다. 태연하게 손을 까딱대던 소녀가 솜털을 쭈뼛 세우며 하악질 하듯 태오를 쏘아봤다.


태오는 머리끝까지 오른 열을 식히려 애썼다. 애새끼만 아니었으면 진작 험한 말이 나갔을 것이다.




“그게, 무슨…… 개소리인지 설명해 봐.”




태오는 저런 개잡소리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으나 소녀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닐걸? 나 같은 애를 낳는 일에 예쁘고 고운 말이 나올까?”




“너 같은 애가 뭔데.”




“귀태(鬼胎). 인간이 귀신이랑 씹질해서 낳은 아이라는 뜻이지.”




소녀는 신랄하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으나 허황된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 복채 받은 값은 해야지. 이제부터 나 같은 애를 배지 않는 해결법을 알려 줄 테니까.”




“부적 같은 거라도 써 주는 거야?”




우림의 말에 소녀는 몹시 재미있다는 것처럼 깔깔 웃었다.




“살아 있는 부적이 옆에 있는데 내가 써 준 부적이 필요할까?”




“살아 있는 부적?”




“저 아저씨 말이야.”




창백한 손가락이 태오를 가리켰다.




“이사님……?”




“생각해 봐. 기이하고 괴이쩍은 일에 시달려 단명할 미인박명(美人薄命)의 팔자가 어찌 아직 살아 있겠어?”




우림을 보고 산송장이니 단명할 팔자니 되는대로 지껄이는 말에 태오의 눈썹이 들썩거렸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살, 흉흉한 일로 피를 보게 될 백호대살(白虎大殺)의 팔자를 타고났으나 직접 살(殺)을 끊어 낸 생부적이 바로 옆에 있잖아. 산군(山君)을 역으로 잡아먹은 셈이니 이보다 더 강력한 문지기가 어디 있겠어! 살고자 하니 음란병이 든 거지!”




깔깔깔. 소녀는 흰자위만 남은 눈으로 눈물을 훔치며 포복절도했다.




“꽃잎이 다 사라져 귀문이 봉인될 때까지 씹질이나 열심히 해. 그게 언니가 살길이니까!”




웃으며 소리치는 소녀의 목소리가 신당 안을 소름 끼치게 울렸다.




한참을 웃던 소녀는 돌연 고약한 태도로 두 사람을 쫓아내려 했다. 


할 말 다 했으니 들을 거 다 들었으면 어서 썩 꺼지라는 말에 태오는 뭐 이런 게 다 있나 하는 눈으로 소녀를 노려보았다. 


우림은 그런 태오를 말리며 소녀에게 물었다.




“저기, 네 이름은 뭐야? 내 이름은 우림이야. 백우림.”




떠날 때가 되자 문단속도 제대로 하지 않는 음산한 별장에 혼자 남을 소녀가 걱정되었다.




팔짱을 낀 채 떠나려는 두 사람을 감시하던 괴팍한 소녀는 걱정 어린 시선을 느끼고 입술을 살짝 벌렸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귀태(鬼胎)를 배척했다. 삿되고 불길한 존재임을 무의식중에 깨닫는 것이다. 


우림도 마찬가지일 텐데 사람이 쓸데없이 순하고 물렀다. 그러니 귀(鬼)의 관심을 받아 귀문이 열린 것이다.




소녀는 처음으로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알아. 만날 우(遇), 수풀 림(林). 귀인(貴人)을 부르는 이름이잖아. 오직 귀인을 불러들이기 위해 지은 이름이지.”




“응?”




“언니는 숲이야. 숲을 지키는 건 귀(鬼)가 아니라 산군이지. 그러니 함부로 귀(鬼)를 꼬시지 마.”




소녀는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끝까지 자신의 이름을 말해 주지 않았다.




* * *




우림은 뜨끈뜨끈한 머리를 창문에 살짝 기댔다. 씹질이나 열심히 하라는 소녀의 말이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멀미 나?”




태오가 창문을 열며 물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괜찮다고 했지만 태오는 한적한 시골 노지에 차를 멈추어 세웠다. 


옆에는 7월의 해바라기가 한가득 피어 있었다. 우림은 풀이니 꽃이니 하는 것들을 좋아했으니 눈요기하면서 잠시 쉬기 괜찮았다.




“이사님, 나 사진 찍어 줘요.”




해바라기밭을 보고 팔랑팔랑 뛰어간 우림이 웃으며 말했다.




태오는 몇 번 써 본 적 없는 신형 핸드폰의 기본 카메라 어플을 켰다. 


우림은 카메라를 든 태오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해를 따라 활짝 핀 해바라기가 우림의 왼쪽 뺨을 조금 가렸다.




찰칵! 셔터음이 터졌다. 태오의 갤러리에는 오랜만에 새로운 사진이 추가되었다.




“잘 나왔어요?”




“응.”




우림이 다가와 사진을 확인했다. 정 없이 딱 한 컷만 찍었는데 그럴듯한 사진이 나왔다. 


오밀조밀 조그만 얼굴이 사랑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연갈색의 머리칼과 햇빛을 머금어 밝아진 눈동자가 샛노란 해바라기와 퍽 어울렸다.




“나, 이 사진 보내 줘요.”




우림은 만족해하며 태오의 팔을 흔들었다. 태오가 채팅방을 켜 사진을 전송하고 나서야 흔들거림이 멈추었다.




“이사님 사진도 찍어 줄게요.”




“됐어.”




“내가 찍고 싶단 말이에요.”




사실 우림의 진짜 속셈은 이거였다. 해바라기밭에 선 태오의 사진 같은 건 오늘이 아니면 영원히 못 건질지도 몰랐다.


우림은 태오의 핸드폰을 빼앗아 얼굴 앞에 들었다. 핸드폰 카메라가 태오를 담고 멀어졌다. 캐주얼한 옷차림이 해바라기와 잘 어울렸다.




“이사님, 키 진짜 크네요…….”




해바라기는 우림의 키를 약간 넘어섰으나 태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아래에 있었다. 


새삼 놀라는 우림이 우스웠는지 태오가 픽 입꼬리를 올렸다. 


어떤 각도로 찍어야 잘 나올까 고민하며 몸을 이리저리 돌리던 우림은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끝없는 셔터음에 태오는 황당해했다.




“뭘 얼마나 찍는 거야?”




그는 성큼 걸어와 그 와중에도 셔터음을 터트리는 핸드폰을 손으로 가리어 빼앗았다.




“아앗! 아직 덜 찍었단 말이에요.”




“그만 찍어. 20장은 찍었을 거다.”




태오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우면서 약간 부끄러운 것 같았다. 


살짝 붉어진 얼굴을 신기하게 바라본 우림은 화면을 톡톡 건드려 채팅방에 사진을 전송했다.




그래도 역시 처음 찍은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옅게 웃는 정도였지만 태오 특유의 나른한 분위기가 사진에 잘 담겨 있었다.




“같이 찍어요.”




우림은 카메라를 셀카 모드로 전환하고 태오의 팔에 기대어 카메라를 높이 들었다. 


팔이 짧은 편은 아니었는데 태오가 너무 커서 생각처럼 각도가 안 나왔다. 


팔을 쭉 펴며 끙끙거리는 우림을 보다 못한 태오가 핸드폰을 뺏어 들었다. 그는 화면을 어색하게 노려보며 카메라 버튼을 아래로 눌렀다.




차차차차차차찰칵!




자기도 모르게 연속촬영 동작을 실행해 버린 태오가 입술을 벌리고 멍청히 화면을 바라보았다. 옆에 서 있던 우림이 웃음을 터트리는 게 보였다.




“와, 사진 엄청 잘 나왔어요!”




얼굴이 다 한 사진이었다. 태오는 평소보다 눈과 입술에 힘이 풀려 있어서 조금 더 순한 느낌이 났다. 활짝 웃고 있는 우림과 잘 어울렸다.


우림은 사진을 넘겨 보며 어떤 걸 베스트 컷으로 뽑아야 할까 고민했다. 나중에 집에 가서 천천히 봐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위이이잉! 귓가에서 벌레의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꺄아……!”




우림은 섣불리 움직이지도 못하고 굳어서 목을 움츠렸다. 맑은 눈동자가 울상을 짓고 태오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있어.”




태오는 우림의 머리칼에 앉은 땅벌을 손가락으로 쳐 냈다.




“하다 하다 이런 벌레까지 꼬이네.”




그는 우림을 끌어안아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독한 향수를 쓴 것도 아니고 바디워시 향인데 뭐가 이렇게 달콤한지. 저 벌레도 이 냄새를 맡고 모여든 거라면 참을 수 없이 화가 날 것 같았다.




“저기 오두막도 있어요.”




우림은 금세 재잘거리며 태오의 손을 잡아당겼다. 시원한 수박이라도 한 입 크게 베어 먹어야 할 것처럼 생긴 오두막이었다.




“저기서 키스해 주세요, 이사님.”




“뭐?”




“드라마 보면 이런 곳에서 하던걸요.”




엉뚱한 말에 태오가 피식 웃었다.




“대체 뭘 본 거야.”




“야한 거?”




사람 뒤집는 말이나 지껄이는 주제에 무구한 얼굴이었다.




우림은 새하얗게 웃으며 태오의 목덜미를 팔로 감아 당겼다. 그녀는 곧바로 뒤꿈치를 들고 입술을 포갰다.




태오는 우림이 본 드라마가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이런 날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비에 홀딱 젖은 남녀가 낡은 지붕 아래에 숨어 뽀뽀 따위나 하는 청춘 드라마일 것이다.




그러나 태오의 장르는 그런 게 아니었다.




“흐, 으응……!”




그는 팔뚝으로 우림의 엉덩이를 받쳐 그녀를 안아 들었다. 


오두막 기둥에 안아 든 우림을 기대어 놓은 태오가 조그만 입술을 빨았다. 


섹스 할 때처럼 입 안을 파고들어 입천장이나 점막을 애무하는 게 아니었다. 말캉하게 젖은 입술 표피를 빨고 비비어 애무했다. 간질간질하게 애를 태우는 키스였다.




우림은 뜨거운 숨결이 축축한 살덩이에 닿을 때마다 저릿해졌다. 입술이 아니라 클리토리스를 빨리는 것 같았다. 


그의 배꼽 부근에서 벌어진 가랑이가 속옷을 적시며 축축해졌다.




“이사님, 나 엄청 흥분돼요……. 가슴, 흐…… 빨리고 싶어…….”




“참아. 여기서 네 젖을 빨 수는 없잖아.”




“아무도 없는걸요…….”




우림은 은밀하게 속삭이며 태오를 꼭 껴안았다. 태양이 두 눈을 시뻘겋게 뜨고 있는데 그녀는 거침없었다.




“하아…… 안 돼.”




이성을 부여잡은 태오가 나직이 속삭이며 입술을 붙였다. 


차지게 젖은 표피가 우림의 입술을 물크러트리며 뜨겁게 지졌다. 몸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릴 것 같았다.




“그럼, 차에서 할래요?”




우림은 조금 헐떡이며 속삭였다.




태오는 재잘대며 자꾸 그를 시험하는 목소리를 입술로 덮어 버렸다. 우림은 달콤한 한숨을 쏟아 내며 태오를 꽉 껴안았다.




* * *




태오의 차는 양양의 한 호텔에 멈추었다.


체크인하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오는 동안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띠릭! 카드키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문을 열었다. 열린 문 안으로 먼저 들어간 우림이 뒤이어 들어오는 태오를 끌어당겨 벽으로 밀쳤다.




“흐응…….”




비스듬하게 교차한 입술이 잡아먹을 듯 서로를 빨았다. 


태오는 우림을 남김없이 삼키며 옷을 벗겼다. 얇은 여름옷이 현관으로 하나씩 툭툭 떨어지면서 입술이 잠시 떨어졌다가 붙기를 반복했다.


태오는 티셔츠를 벗어 던지고 우림을 안아 들었다. 우림을 데리고 욕실 샤워 부스에 들어간 그가 물을 틀고 다시 입술을 겹쳤다.




“하읍, 으…… 으응……!”




우림의 등에 차가운 욕실 벽이 닿았다. 쏟아지는 시원한 물줄기가 무더운 열기를 식혀 냈다. 


한기에 조금 떠는 우림을 꽉 껴안으며 태오가 레버를 온수 쪽으로 돌렸다.




솨아아아. 쏟아지는 온수가 열기를 전달했다. 살이 닿을 때마다 덥고 습했다. 뜨겁고 축축하고 달아올랐다.




“이사님…… 하으, 나, 젖 흐르는 같아요…….”




우림은 가슴 쪽으로 태오의 얼굴을 붙잡아 내렸다. 


젖은 채 이마를 가린 검은 머리칼이 어느 때보다 선정적이었다. 


물에 젖은 태오가 우림을 들어 올려 젖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날렵한 콧대를 타고 흐른 물방울이 뽀얀 가슴골에 고였다.




츄웁, 쭙, 츕!




젖물이 튀며 지나치게 야한 소리가 났다. 




우림은 뺨을 발갛게 물들이며 젖을 빨고 있는 태오를 내려다보았다. 불그스름하게 젖은 젖꼭지를 뱉어 혀로 굴리며 우림을 바라보는 눈빛이 충격적으로 오싹했다.




“하읏, 이사님, 흐…… 아으, 너무, 으흐, 아!”




쫙 벌어진 발가락 사이사이의 여린 살도 물기로 축축했다. 탄탄한 팔뚝 위로 둔부가 미끄러졌다. 우림은 태오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흐, 으…… 아흣……!”




“몸을 왜 이렇게 떨어. 추워?”




“나, 흐…… 너무 느껴서, 흐아……!”




우림은 태오를 꼭 껴안으며 내려 달라고 속삭였다. 연약한 발바닥이 딱딱한 화장실 타일을 밟았다. 


우림은 비틀거리며 물이 줄줄 흐르고 있는 태오의 몸을 매만졌다.




“이사님……. 하아, 진짜 예뻐요…….”




“예쁜 건 너겠지.”




“진짜, 너무 좋아…….”




우림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태오의 복부에 입을 맞추었다. 총상이 남은 자리였다.




“일어나. 무릎 아파.”




“싫어요. 나도 빨아 볼래요. 궁금해…….”




우림은 혀를 내밀어 찌그러진 채 새살이 돋아난 상흔을 핥았다. 


태오가 우림의 목숨을 살려 준 첫 번째 증거였고, 또한 그것은 두 사람의 연결 고리였다.




태오의 몸에는 이것 말고도 상처가 많았다. 언제 생겼는지 우림은 알 수 없는 게 대다수였다.




백 회장이 우림을 구해 준 태오를 후원하면서, 태오는 우림이 열한 살 때부터 우림의 집에서 살았다. 


열한 살 이전의 기억은 선명하게 남은 게 없었고 우림이 기억하는 한 태오는 항상 우림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하지만 태오는 우림보다 일곱 살 많았다. 태오가 열여덟 살 이전의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림은 알지 못했다.


맹인 소녀는 그가 흉악한 살(殺)을 직접 끊어 냈다고 했다. 쉽지는 않았는지 그 고단함이 몸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굉장히 아름답고 관능적인 몸이었다. 우림은 뜨거운 살갗에 키스하며 빳빳하게 발기한 성기를 손에 쥐었다.




“흣……!”




자그만 손에 치부를 내어 준 태오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우림이 조심스레 그 끝을 입에 물었다. 


그는 움찔거렸으나 우림의 뺨을 살짝 감싸는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동그란 귀두는 좆기둥에 비해 좀 더 선홍빛이었다. 온수에 푹 익은 그것은 데친 문어 머리처럼 말랑하고 뜨거웠다. 


전체적으로 보면 예쁜 모양은 아니었지만 자세히 보면 귀여운 부분도 보였다.




“커서, 많이는 못 삼키겠어요…….”




우림은 입을 크게 벌려 최대한 삼켜 보았다. 


축축한 입술로 귀두를 문질렀더니 촘촘히 쪼개어진 복근이 역동적으로 꿈틀거렸다. 


우림은 거친 숨소리를 내며 눈가를 일그러트리는 태오를 흘긋 올려다보며 막대 아이스크림 빨듯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런 건 어디서 배웠어.”




“영상 봤어요.”




우림은 순진하게 대꾸하며 성기를 입에서 뺐다. 


음란물에서 본 것처럼 능숙하게는 안 되었다. 태오의 것이 너무 커서 턱이 아팠다. 우림은 쿠퍼액과 물기에 젖은 성기를 쥐고 흔들었다.




“이사님……. 나도 정액 먹어 볼래요.”




“그걸 왜 처먹어…….”




“이사님도 내 젖 매일 드시잖아요. 나도 먹어 보고 싶단 말이에요.”




우림은 맹랑하게 말하며 귀두를 입술로 머금었다. 음란물에서 본 것을 따라 하며 손으로 기둥을 붙잡아 빠르게 흔들고 입을 크게 벌려 성기를 빨았다.




“씨발…… 하아…….”




서늘한 입술이 붉게 벌어지고 짐승처럼 날카로운 눈동자가 탁하게 일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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