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 계약 #4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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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계약 #4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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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계약 #4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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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론 어림도 없군.”


“하아…… 하아……. 네?”






잠긴 목소리로 내뱉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희민이 달뜬 얼굴로 색색거리며 되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혁이 희민을 놔주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 실린 무게감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희민이 흐릿한 시야로 앞을 바라봤다.






“난 씻고 나가야 하니 좀 더 자 둬요.”






희민은 머릿속까지 쿵쿵 울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욕실로 걸어가는 정혁을 바라봤다.


조각같이 근사한 남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던 그녀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어.’






씻고 싶었지만 일단 정혁이 씻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지금은 무엇보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어제부터 이어지던 극심한 쾌락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자극의 연속이었다.






일단은…… 좀 쉬자.






그가 샤워하고 나올 때까지 쉬고 있자고 생각하며 희민은 눈을 감았다.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든 모양이었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낯선 감촉에 희민이 번쩍 눈을 떴다.






‘뭐지?’






놀라서 커진 그녀의 눈에 슈트 차림의 정혁이 보였다. 그가 따스하게 데운 물수건으로 그녀의 손을 닦아 주고 있었다.






“아, 내가 할게요.”


“누워 있어요.”






일어서려는 희민을 정혁이 저지했다.






“다리에 힘이 없을 테니까.”




“…….”






그의 말이 맞아 희민은 입을 다물었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다리에는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희민은 잠자코 자신의 손을 닦아 주는 정혁을 바라봤다. 


그의 것과 자신의 것으로 엉망이 된 채 헐벗은 자신과 달리 완벽하게 차려입은 정혁을 보니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녀에게 스스로 문지르게 했던 손바닥을 닦아 준 정혁이 말했다.






“다리 벌려 봐요.”


“거긴 내가 할게요.”






지금껏 겪어 본 적 없는 일에 희민이 얼른 말하자 정혁이 내리고 있던 시선을 들었다.






“내가 벌리게 할 겁니까?”






감정 없는 목소리였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






살짝 입술을 깨문 희민이 다리를 천천히 벌렸다. 그곳에 닿는 그의 시선이 느껴지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하아…….’






희민이 속으로 숨을 내쉬는데 정혁이 물수건으로 허벅지부터 닦아 내기 시작했다. 


천천히 허벅지 위로 올라간 따스한 수건이 도톰하게 부어오른 속살에 닿았다.






‘읏.’






희민은 입 밖으로 신음이 나올 것 같은 것을 겨우 억눌러 참았다. 


헤어스타일까지 완벽하게 세팅한 슈트를 입은 남자가 자신의 벗은 다리 사이를 닦아 주고 있는 모습이 시각적인 자극을 줬다.






정혁은 생각보다 정성껏 그녀의 몸을 닦아 줬다. 


섬세하고 느릿한 손길에 오히려 몸이 달아오를 것만 같아 희민은 일부러 표정을 굳혔다.


긴장한 상태로 보고 있는데 다 닦아 준 정혁이 상체를 세웠다.






“그 방으로 돌아갈 겁니까?”






정혁이 묻자 희민이 다리를 모으며 그를 바라봤다.






“아마도요.”






엉덩이부터 이어지는 하얗고 긴 다리에 그의 시선이 순간 찌르듯 박혀 들었다. 


그 시선에 희민은 또 작게 숨을 들이켰다. 


잠시 다리에 시선을 뒀던 정혁이 제 손목시계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당신은…….”






뭔가 질문하려던 희민이 시계로 향했던 정혁의 시선이 자신에게 옮겨지자 입을 다물었다.






“……아니에요. 그보다, 언제 돌아오는지는 알려 줄 수 있나요?”


“아마 일주일 정도일 겁니다.”






일주일간 혼자 생활하며 이곳에 적응할 수 있을까. 희민이 조용히 생각하고 있는데 정혁이 몸을 일으켰다.






“식사는 우선 이곳으로 가져다주게 하죠.”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정혁이 돌아섰다.






“…….”






침실을 빠져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던 희민은 시야에서 그가 사라지자 어깨 힘을 탁 풀었다.






‘그런데 당신은, 밖에 나가도 되나요?’






방금 그에게 물으려던 걸 떠올린 희민이 생각에 잠겼다. 


그 질문은 서정혁에 대한 소문 때문이었다. 


저택 안에 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소문은 그의 다른 소문들과 함께 그에 대한 이미지를 더 음습하고 괴팍하게 만드는 거였다.


그런데 일주일씩이나 나갔다 오다니. 게다가 그게 아주 일상적인 걸로 보이고…….






“소문과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실제로 만난 그는 소문과 겹치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점이라면 성도착증일 텐데 그의 말대로라면 그는 경험이 없었을 테니 그런 소문 또한 맞지 않고.






희민이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알지도 못할 일.


한숨을 내쉬며 긴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데 희민의 시선에 침대 한쪽에 있는 가운이 보였다.






그 남자가 놓고 간 건가?






“아, 곧 식사가 온댔지.”






희민은 가운을 입어 벗은 몸을 가렸다. 식사라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입 안에 침이 돌았다. 


거의 꼬박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기력을 탕진했으니 배가 고플 법도 했다. 


그런데 서정혁과 함께 있는 내내 배고픔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니.






가운을 입고 다시 침대 위에 누워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희민은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최악은 아니 건 확실한데…….’






오히려 서정혁보다 육체적으로 만족한 건 자신이라는 어이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반응해 버렸잖아.


이 침실에서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 보던 희민은 도저히 기억 속의 그 여자가 자신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 쾌락에 약한 사람이었나?’






얼마 안 되는 몇 번의 연애를 하는 동안 늘 상대에게 집중하기가 힘이 들었다. 특히 육체적으로는 더 그랬다. 


전희도 없이 그저 당장 욕구를 해결하려는 남자들과의 섹스가 경험의 전부이다 보니 이런 쾌감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매번 관계를 피하게 되고, 상대방은 어김없이 거기에 불만을 가졌다. 


그러다 그녀의 커리어가 자신보다 앞서가는 순간 어김없이 파경이 왔다.






‘결국 그 정도의 감정이었던 거지. 그 남자들은.’






희민의 얼굴에 쓴웃음이 스쳤다.






떠올려 보면 그들은 대학에서, 혹은 회사에서 잘나가는 그녀와 사귀는 걸 무슨 감투같이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래서 연애하기 전까진 그렇게나 극진하고 친절하다가 막상 연애로 들어가면 열등감이 터져 나오는 일들이 많았다. 


당시엔 어려서 잘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딱 그 꼴이었다.


그래서 섹스할 때도 자신을 만족시켜 주려는 건 없고 오히려 군림하려 했다. 


하나도 재미없고, 자극도 없었다. 섹스는 다 그런 건 줄 알았다.






‘아, 쓸데없이 안 좋은 기억까지 떠올랐잖아.’






희민이 인상을 살풋 찡그리는데 침실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식사 가져왔는데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희민이 몸을 일으키며 대답하자 어제 그녀를 이 방으로 이끌었던 메이드가 이동식 트레이를 밀고 들어왔다. 


희민은 그사이 침대 위에서 가운을 여미며 앉았다.






“침대 위에 세팅해 드릴까요? 아니면 트레이 위에 해 드릴까요.”


“그 위에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메이드가 트레이 안에서 식지 않도록 밀폐된 접시들을 하나씩 꺼내 올리기 시작했다. 


고소한 버섯수프와 따스하게 조리된 요리의 냄새가 코를 자극하자 희민은 더 허기가 졌다. 


살면서 이렇게 배고픔을 느꼈던 적이 있을까 싶을 만큼.






그만큼 그 남자와 기력을 쓴 건가?






왠지 민망한 기분에 시선을 트레이 위에만 고정하고 있는데 세팅을 마친 메이드가 티포트를 들어 찻잔에 차를 따라 줬다. 


그걸 보고 있던 희민이 메이드에게 말했다.






“식사한 뒤에 아까 그 방으로 옮겨도 될까요?”


“준비해 두겠습니다. 그럼 식사 중에 필요한 게 있으시면 불러 주세요.”


“아, 그리고…….”






건조하게 말한 메이드가 몸을 돌리려는데 희민이 그녀를 불렀다. 다시 희민에게 몸을 바로 세운 메이드가 공손히 손을 모았다.






“말씀하세요.”


“내가 당신을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편하신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혹시 이름을 알려 줄 수 있나요?”






마땅한 호칭이 없어 이름을 부르는 게 좋을 것 같아 희민이 물었다. 그러자 메이드가 잠시 대답하지 않고 바라봤다.






‘이름을 묻는 게 혹시 무례한 질문인가?’






혹시 자신이 실수한 게 아닐까 생각한 희민이 조심스럽게 마주 보는데 곧 메이드가 입을 열었다.






“전 유리라고 불러 주세요.”






방금 전의 침묵이 착각이었나 싶을 정도로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희민이 안심했다.






“유리……. 예쁜 이름이네요.”


“감사합니다.”


“유리 씨, 혹시 가능하다면 내가 가져온 노트북을 사용해도 될까요?”






희민이 내심 조금 긴장하며 유리의 표정을 살폈다.






“어디에 있나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묻는 말에 희민이 얼른 말했다.






“제가 가져온 캐리어에 있어요.”


“확인해서 그것도 방에 가져다 놓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럼 밖에 있겠습니다.”






고개를 가볍게 숙인 유리가 침실을 나갔다. 아마 편하게 식사하라고 배려해 주는 것 같았다.






‘아, 다행이다.’






희민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가져온 노트북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까 봐 걱정했었다. 


계약 조건에는 없었지만 보안 조건을 걸어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에겐 꼭 필요한 거였다. 


앞으로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었다.






희민은 안심한 얼굴로 식사를 시작했다.










그녀가 당분간 지낼 방에 들어오자 노트북과 캐리어가 통째로 놓여 있었다. 


화장대 위에 놓인 가방에서 휴대폰을 빼내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유리 씬가?’






희민이 휴대폰을 든 채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자 예상외로 차 실장이 서 있었다.






“차 실장님.”






어제부터 계속 여기 있었던 건가?






희민이 의아하게 차 실장을 바라봤다


 차 실장의 표정이 그 전에 봤을 때보다 더 굳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체 표정이 거의 없는 사람이지만 불쾌한 기색이 느껴져 희민이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차 실장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희민을 똑바로 바라봤다.






“한희민 씨에게 말해 둬야 할 게 있어서요.”


“그게 뭔데요?”






되물으며 희민은 침을 삼켰다. 혹시 노트북 때문에 그러나? 자신이 부탁했다는 걸 듣고 그걸 저지하러 왔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긴장이 됐다.






차 실장이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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